경남도의 지방자치가 단체장의 연이은 사법 리스크에 휘청이고 있다. 경남도 18개 시군 가운데 지금까지 선거법 위반 등 송사에 휘말렸던 곳이 무려 7곳이다. 거제시와 창원시는 이미 시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일찌감치 물러났고, 의령군도 위태롭다. 나머지 4곳도 당선무효형까지 이어지지는 않아 자리는 유지했으나 모두 유죄 선고를 받은 터라 리더십에 균열이 가며 연임을 장담 못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사법리스크가 이어지자 경남에서도 ‘책임 정치’를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홍남표 전 창원시장은 지난 3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당선이 무효가 되면서 불명예 퇴진했다. 홍 전 시장은 2022년 6월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 캠프 간부와 짜고 경쟁 후보를 매수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홍 전 시장의 공모 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이 홍 전 시장 상고를 기각하면서 징역형이 확정됐다. 선거법상 선출직 공무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그 직을 상실한다.
지방선거 당내 경선을 앞두고 당원 명부 제공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홍보 등을 대가로 지역구 국회의원실 관계자에게 금품 제공하는 데 관여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박종우 전 거제시장도 지난해 11월 시장직을 잃었다. 1심과 2심 모두 혐의를 인정해 각각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박 전 시장은 “돈을 준 사실 자체가 없음에도 이런 판결을 한 법원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다’며 기각했다.
남은 경남 단체장 중 가장 코너에 몰린 건 오태완 의령군수다. 잇따른 송사로 재선 임기 내내 군정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오 군수는 초선 말기인 2021년 6월 군청 출입 기자들과 저녁 모임을 하던 중 여성 기자에게 성희롱 발언을 하고 손목을 잡는 등 추행한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 이 과정에 오 군수는 “정치적 흠집 내기”라고 반발하며 자신을 고소한 피해자를 명예훼손과 무고 혐의로 맞고발했다. 지난한 법정 다툼 끝에 강제추행 사건은 벌금 1000만 원으로 마무리돼 한숨 돌렸지만, 무고 사건이 1심에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며 다시 벼랑 끝으로 몰렸다. 선출직 공직자는 일반 형사사건에서 금고형 이상이 확정되면 직을 상실한다.
어렵게 자리는 지켰지만 유죄 선고로 고개 숙인 단체장도 여럿이다. 지역 축제 현장에서 이듬해 총선 출마한 유력한 현직 국회의원 지지를 호소한 혐의로 기소된 천영기 통영시장은 1심과 2심에서 벌금 90만 원을 선고 받았다.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벌금 80만 원이 선고된 성낙인 창녕군수는 지난해 2월, 항소심 재판부가 검찰 항소를 기각하면서 군수직을 유지하고 있다. 구인모 거창군수과 김윤철 합천군수 역시 1심에서 각각 벌금 70만 원, 벌금 90만 원이 확정됐다. 그러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중도 낙마는 면했다.
그러나 막강한 권한이 집중된 지자체장이 법정에 서면 지방정부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앞서 6개월 시정 공백 사태를 겪었던 거제시는 지난 2일 재선거를 통해 새 시장을 선출했지만, 짧은 임기에 각종 현안이 뒤엉킨 상태다. 창원시는 내년 6월 3일 치러질 지방선거까지 무려 1년 2개월을 권한대행 체재로 버텨야 한다. 창원시는 장금용 부시장 권한대행 체재로 시정 연속성과 행정 안정성을 지켜나간다는 복안이지만 리더십 부재는 불가피하다.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재판을 받으면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고, 권한을 심도있게 쓸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권한대행 체제는 행정력을 발휘하거나 외부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고, 직을 유지해도 유죄 꼬리표가 남아 임기 내내 한계로 작용하게 된다”면서 “이로 인한 불이익은 결국 시민에게 돌아가는 만큼, 공천권을 쥔 공당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정치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