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에서 쓰러져 숨진 아버지… 술에 취해 다툰 아들은 ‘무죄’ [사건의 재구성]

입력 : 2025-04-27 19:52:00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 프린트

부산지법, 40대 아들에 무죄 선고
70대 부친 폭행치사 혐의로 기소
검찰 “몸통 밀어 얼굴 부딪혀 사망”
법원 “폭행 증거·정황 찾을 수 없어”
부검 결과와 가족 진술 등도 반영

부산지법 청사. 부산일보 DB 부산지법 청사. 부산일보 DB

“말다툼이 시작됐다. 술 마시고 온 아들과 잠에서 깬 남편이었다. 큰 싸움이 걱정돼 안방으로 갔다. 입구에 왔을 때쯤 남편이 바닥 청소기 위로 쓰러졌다. 아들이 침대에 눕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남편은 병원에서 결국 사망했다.”

부산 한 빌라에 살던 70대 남성 A 씨가 숨진 지난해 8월 25일. A 씨 아내는 경찰 조사에서 남편이 숨진 경위를 이렇게 설명했다.

법원이 증거로 인정한 사실에 따르면 40대 아들 B 씨는 이날 오전 4시 15분쯤 귀가했다. 지인을 만나 소주 3~4병에 맥주 1000cc를 마시고 온 그는 “집이 더우니 에어컨을 켜자”고 어머니에게 말했다. 아들은 창문을 닫기 위해 아버지가 있던 안방에 들어갔고, 오전 4시 18분 “아버지가 쓰러졌다”고 119에 신고했다. 집에 돌아온 지 3분 만이었다.

사건을 조사한 검찰은 아들 B 씨 폭행으로 아버지 A 씨가 숨지게 됐다고 판단했다. 당시 아들은 덥다고 화를 내며 에어컨을 켜려 했고, 전기세를 걱정한 아버지가 제지한 것으로 봤다. 검찰은 화가 난 아들이 양손으로 아버지 몸통 부위를 밀어 진공청소기 등에 얼굴을 부딪치게 만들었다고 결론 내렸다. 부산지검은 올 2월 B 씨를 존속폭행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B 씨 측은 재판에서 아버지가 폭행 때문에 사망한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침대 위 모서리 쪽에 서 있다가 앞으로 넘어져 청소기에 머리와 얼굴을 강하게 부딪쳤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초반에 B 씨가 진술을 번복하거나 추측에 기대 진술한 점 등을 의심스럽게 여겼다. 최초 경찰 조사에서 몸싸움을 벌였다며 그 상황을 진술했지만, 검찰 조사에선 “술을 마시고 귀가한 후부터 아버지가 쓰러진 모습을 보기 전까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번복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검찰 조사에서 재차 ‘서로 밀고 당기며 몸싸움을 한 것은 사실’이라 진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후 B 씨가 ‘자신이 아버지를 밀었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취지로 추측성 진술을 했다고 일관되게 밝혔고,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사실대로 말하기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B 씨는 “(술에 취한 상태라) 집에 들어왔기 때문에 집에 왔다고 느꼈고, 눈을 떴는지 정신이 들었는지 정확히 모르는데, 앞에 쓰러진 아버지가 보여 순간 놀랐다” 등의 진술을 이어갔다.

재판부는 유일한 목격자인 A 씨 아내 진술에도 주목했다. 그는 “안방 입구에서 보니 남편이 침대 위에 선 채로 갑자기 앞으로 넘어졌다”는 구체적 진술을 반복했고, 수사관 질문에 아들이 남편을 발로 차거나 밟는 장면을 본 적 없다고 답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서 있던 위치와 쓰러진 지점이 맞닿아 있고, 진술대로라면 턱뼈 골절 경위가 합리적으로 설명된다”며 “고령인 아내가 허위의 진술을 꾸며내기엔 범행 시점과 조사 시점 간격이 매우 짧다”고 했다. 또 “아들과 진술을 맞춘 정황이 확인되지 않아 충분히 믿을 만하다”고 밝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로도 A 씨가 폭행당한 사실을 증명할 순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A 씨 아래턱뼈 골절은 주로 밟거나 차는 행위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부검의 의견이 있지만, 발로 물리력을 행사했다고 볼만한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며 “폭행 등 소란이 있었다고 볼만한 흔적이 없으며 A 씨 팔, 다리, 몸통 등에 방어흔도 찾아볼 수 없다”고 밝혔다.

A 씨가 사건 3일 전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 용종을 제거했고, 사건 전날 밤 “갑자기 왜 이렇게 어지럽노”라고 호소했다는 A 씨 아내 증언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당시 잠에서 깨 침대 위에 서 있다가 어지럼증을 느껴 균형을 잃고 앞으로 넘어졌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범행 동기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주목했다. 재판부는 “B 씨가 아버지에게 폭력적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감정이 좋지 않거나 서로에 대한 반감을 품었다고 보긴 어렵다”고 봤다.

결국 1심 법원은 아들 B 씨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는 존속폭행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 씨에게 지난 23일 무죄를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이 아버지를 폭행했다는 점, 그로 인해 사망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