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를 잘 그리는 사람입니다.” 어느 여름날, 통도사를 찾은 장욱진(1917~1990) 화백에게 한국 선불교의 큰 어른 경봉 스님이 “당신은 뭘 하는 사람이오”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짧은 한 문장이지만, 장욱진의 예술 세계는 이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리기 쉽지 않은 까치, 나무, 해, 달, 집, 가족. 마을, 아이…. 그는 그 익숙한 대상을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형태로 화폭에 담아냈다. 과장이나 허세는 없다. 다만 그저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이 있을 뿐. 그 눈에는 동심이 있고, 그 화폭엔 우리 모두가 한때 간직했던 천진난만함이 있다.
장욱진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특히 한국인의 심성에 가장 깊숙이 스며드는 화가로 평가 받는다. 그의 작품은 서양화를 기반으로 하되, 그 안에 동양적 정신과 형태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며 두 세계가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 미감을 보여준다. 그는 부산과도 인연이 있다. 1951년 1·4후퇴 때 인천에서 배편으로 부산에 도착해 그해 여름 종군화가단에 합류하기 전까지 용두산 인근에서 생활했다. 그 시절의 풍경은 ‘자갈치 시장’(1951) 등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제 그 동심의 세계가 태평양을 건넌다. 오는 7일부터 7월 19일까지 현대미술의 심장이라 불리는 미국 뉴욕의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장욱진 화백의 첫 해외 개인전이 열린다. ‘가족도’(1972), ‘집과 아이’(1959) 등 대표작 40여 점과 함께 1992년 뉴욕에서 발간된 화집 ‘황금방주’가 실물로 소개된다. ‘황금방주’는 화백이 생전에 직접 고른 12점의 유화를 바탕으로 한 한정판 판화집으로 그의 예술적 정수를 담은 귀중한 기록이다.
장욱진은 결코 거창한 주제를 말하지 않는다. 단지 자연과 가족,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그림으로 전할 뿐이다. 그의 화폭 속 아이와 까치, 해와 달, 그리고 집은 국경을 초월해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의 언어다. 바로 이것이 세계 무대에서도 그의 그림이 통할 수 있는 이유다. 김환기의 ‘달항아리’가 세계인의 마음을 울렸다면, 이제는 장욱진의 ‘순수’와 ‘동심’이 그 뒤를 이을 차례다. 전쟁과 분열, 혼란이 끊이지 않는 오늘의 세계에서 그의 그림이 전하는 순결한 시선과 무구한 감성이야말로 우리에게 꼭 필요한 위안이 아닐까. 그의 동심이, 그 맑고 깊은 시선이, 세계 미술계를 조용히 그러나 따뜻하게 흔들기를 바란다. 이번 전시가 그 아름다운 시작이 되기를.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