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단일화를 압박하는 당 지도부에 대해 “더 이상 개입하지 말고, 관련 업무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무소속 한덕수 대선 예비 후보와의 단일화는 자신이 주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내 거센 반발에도 당무 우선권을 가진 당 대선후보로서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것이다. 오는 11일을 단일화 ‘데드라인’으로 설정한 당 지도부의 방침에 따르지 않을 가능성도 커졌다. 김 후보와 당 지도부를 둘러싼 당과의 갈등이 일촉즉발로 치닫는 분위기다.
김 후보는 전날인 7시 오후 10시 41분께 캠프를 통해 낸 입장문에서 대선 후보의 당무 우선권을 발동하겠다면서 당 지도부가 전 당원을 대상으로 실시하기로 한 단일화 찬반 여론조사에 대해 “당의 화합을 해치는 행위로,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당 지도부는 더 이상 단일화에 개입하지 말고 관련 업무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이 시각부터 단일화는 전적으로 대통령 후보가 주도한다”면서 “당은 즉시 중앙선대위를 중심으로 대통령 후보를 보좌해 선거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함께 경선에 참여했던 모든 후보를 따로 만나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예정”이라고 전했다. 당 지도부의 단일화 압박을 사실상 월권으로 규정하면서 대선을 위한 당 체제 정비와 단일화 논의는 모두 대선후보인 자신이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러면서 김 후보는 7일 오후 6시 한덕수 예비 후보를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후보 측은 “이 약속은 후보가 제안했다. 단일화와 관련해 더 이상의 불필요한 논쟁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역시 단일화 논의를 자신이 주도하겠다는 의지 표명의 연장으로, 당 지도부의 방침에 구애 받지 않고 후보 간 담판을 통해 단일화 시기, 방식을 결정짓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권성동 원내대표는 두 후보의 회동에 대해 “조금 늦었지만 정말 잘한 결정”이라면서도 “빠른 시간 내에, 대통령 후보 등록 기간 이전에 단일화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 주시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일 만나서 단일화 합의가 이뤄지면 좋겠지만, 아닐 경우에 대비해서 당원들의 뜻이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당 운영에 필요하다. (찬반 여론조사는)그대로 진행하도록 하겠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오는 11일로 단일화 시한을 설정한 당 지도부의 방침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면서 김 후보에 대한 압박도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앞서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의총에서 “김 후보님이 스스로 하신 단일화에 대한 확실한 약속, 한덕수 후보 먼저 찾아뵙겠다는 약속을 믿고 우리 당원들이 김문수 후보를 택했다”며 “이제 와서 그런 신의 무너뜨린다면 당원과 국민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김 후보를 직격했다. 이어 7일 전 당원 대상 단일화 찬반 투표 실시, 그리고 11일까지 단일화 실패 시 자신의 퇴진까지 거론하며 김 후보의 단일화 결단을 압박했다.
그러나 김 후보는 이날 경주 APEC 준비지원단에서 기자들과 만나 “두 번씩이나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당에서 대선 후보까지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며 “후보로서 일정을 지금 시점부터 중단하겠다. 서울로 올라가서 남은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깊이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맞섰다. 김 후보는 또 당 지도부가 오는 8∼9일 전국위원회, 10∼11일 전당대회 소집 공고를 한 데 대해서도 “당 지도부가 정당한 대선 후보인 저를 강제로 끌어내리려는 시도라고 생각한다”고 거듭 비판했다.
김 후보가 이처럼 단일화 논의를 주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이날 한 후보와 회동에서 단일화 시간표와 방식을 둘러싼 양측의 신경전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당 지도부가 요구하는 후보 등록 전 단일화 시간표는 수용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한 후보에 지지율이 조금 뒤처지는 김 후보가 시간을 벌기 위해 사전투표 전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경우, 단일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불만이 고조되면서 당 내홍도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