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이 드론 날리는 꽃할배 “세상은 참 신기합니다”

입력 : 2025-05-16 09:00:00 수정 : 2025-05-16 09: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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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세 실버넷뉴스 이성용 기자
후쿠오카 해외 취재까지 다녀와
세계 최고령 앱 개발자 만나기도
“참여 필요하고 봉사하면 더 좋아”


2018년 드론항공지도사 1급 자격증을 딴 이성용 씨가 경성대 축구장에서 드론을 조정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2018년 드론항공지도사 1급 자격증을 딴 이성용 씨가 경성대 축구장에서 드론을 조정하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오늘 2시간 강의를 위해 집에서 4시간을 연습하고 왔습니다.”

지난 2일 부산 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한국자원봉사연합회에서 열린 행복시민대학 ‘시니어 스마트폰’ 첫날 강의를 마친 강사 이성용 씨(90)의 이야기였다. 시니어 IT 강의를 20년 넘게 해 왔다는 베테랑 강사의 성실성이 짐작되었다. 이날 사용한 <시니어 스마트폰> 교재도 그가 직접 만들었다. 이 책은 스마트폰의 기초부터 환경 설정, 전화 걸기, 메시지 보내기, 카카오톡 사용, 사진 및 동영상 촬영, 사진 편집까지 큰 글씨로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이용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2024년 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의 스마트폰 보유율은 82%가 넘지만 이용률은 65%에 그쳤다. 노인들의 디지털 정보화 역량 수준은 56.5%로 절반 정도에 그쳤고, 특히 75세 이상으로 가면 스마트폰 활용률은 더욱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는 노인은 높은 사회적 참여도와 낮은 고립감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씨가 건넨 명함에는 <실버넷뉴스(www.silvernetnews.com)> 방송보도부 기자라는 직책이 또렷이 새겨져 있었다. 실버넷뉴스는 실버 관련 정책 및 현안을 중심으로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달하겠다는 취지 하에 만 55세 이상의 시니어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는 인터넷 신문이다. 2001년 비영리·비상업적인 실버 언론을 표방하며 창간했다. 이 씨는 올해 90세로 실버넷뉴스에서도 최고령 기자다. 모르긴 해도 현역에서 활동 중인 대한민국 최고령 기자로 추정된다. 이 씨가 태어난 1935년은 조선총독부가 각 학교에 신사참배를 강요하기 시작하던 시기였으니….

참고 삼아 알아보니 현역 기자 중에서 세계 최고령은 이스라엘에서 활동하는 101세의 월터 빙햄 씨다. 그는 1924년 독일에서 태어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다. 지금도 ‘월터의 세계’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예루살렘 포스트>와 <예루살렘 리포트>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다.

이 씨의 존재는 SNS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지난 3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액티브에이징 컨소시엄(ACAP) 20주년 기념 국제회의에 부산에서 90세의 기자가 참가해서 나흘간이나 취재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에 90세에도 활동하는 현역 기자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실버넷뉴스에 들어가 그가 당시에 올린 영상을 찾아 봤다. 한국 측 대표인 노인생활과학연구소 한동희 소장이 “아주 중요한 분을 소개하겠다. 이성용 씨는 실버넷뉴스 영상기자로 부산에서 열리는 행사나 부산의 매력, 축제 등을 영상으로 만들고 있다. 나이가 90세다”라고 말했을 때 장내에는 커다란 환호성이 터졌다.


이성용 씨와 세계 최고령 앱 개발자 와카미야 마사코 씨가 만났다. 이성용 제공 이성용 씨와 세계 최고령 앱 개발자 와카미야 마사코 씨가 만났다. 이성용 제공

그 당시 소감을 묻자 이 씨는 뜻밖에도 새 여자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일본에서 동갑내기 여성 와카미야 마사코 씨를 소개받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애플의 최고경영자 팀 쿡까지 깜짝 놀라게 만든 세계 최고령 앱 개발자다. 은행원 출신으로 60세가 다 되어서 컴퓨터에 관심을 가진 뒤 80세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한 늦깎이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스마트폰 게임 앱 개발까지 해내서 큰 화제가 된 인물이다. 와카미야 씨는 한 인터뷰에서 “인생을 100년이라고 하면 여러 가지를 체험할 수 있다. 일단 해보면 나도 변할 수 있고, 세상도 변할 수 있고, 회사도 바뀔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두 사람은 갑장인데다, 늦게 컴퓨터를 시작한 경험까지 비슷해 앞으로 자주 만나자고 약속했다.

이 씨는 이날 앨범 한 권을 들고나왔다. 거기에는 1965년 국가공무원 응시표부터 1992년 부산지방해운항만청을 퇴직할 때 받은 대통령 포장(褒章)까지 각종 중요 문서가 빠짐 없이 들어 있었다. 70세가 되던 2005년부터 지금까지 20년간 모아둔 문서 기준으로 주요 경력을 정리해 봤다. ①2005년 노인복지관 컴퓨터 강사 활동 시작(70세)-②2007년 실버넷뉴스 기자 임용/10월 이달의 기자상 수상(72세)-③2012년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실전! 뉴스 제작’ 과정 수료(77세)-④3년간 교육으로 2014년 영상편집지도사 자격증 취득(79세)-⑤2015년 부경대평생교육원 UN평화해설사 과정 수료(80세)-⑥2018년 드론항공지도사 1급 취득(83세)-⑦2025년 ACAP 20주년 후쿠오카 회의 취재(90세). 지극한 성실함에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이성용 씨가 1965년이라고 적힌 자신의 국가공무원 응시표를 들어보이고 있다. 이성용 씨가 1965년이라고 적힌 자신의 국가공무원 응시표를 들어보이고 있다.

드론을 날리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요청에 다음번에 경성대 축구장에서 만나자고 했다. 재회하던 날 드론 조종기를 잡은 그의 모습은 천진난만해 보였다. 드론을 처음 날릴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묻자 “참 신기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83세에 드론 조종 자격증을 따서, 90세에 드론을 날리고 있는 분이 더 신기해 보였다. ‘노인과 드론’은 통쾌했다.

이 씨는 정년퇴직한 뒤 나머지 생은 봉사를 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했다. 승용차로 중증 장애자들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는 봉사를 오랫동안 했다. 다른 한편으로 배우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정보화 시대를 주창하며 정보화 교육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사하구청에서 정보화 교육을 줄기차게 듣다 보니 초급반, 중급반, 영상반 등 수료증을 13개나 받게 됐다. 그 뒤 부산 남구청에서 정보화 교육 강사 요청이 들어와 사하구청 추천으로 시니어 정보화 강사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이력서를 내려면 뭔가 자격증이라도 붙여야 하지 않나? 컴퓨터 공부를 시작하면서 각종 자격증을 따게 됐고, 실버넷뉴스 기자가 되고 나니 영상편집도 잘할 필요가 있어서 영상편집지도사 자격증을 땄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앞으로도 새로운 자격증 도전이 이어질까? 더 이상 새 자격증은 필요 없다고 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자격증도 제대로 활용하려면 계속 연구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를 찾는 전화는 지금도 끊이질 않는다. 영상 촬영과 편집 실력이 소문이 나며 잔치나 행사를 앞두고 찾는 사람이 많아서다. 그럴만한 게 그가 카메라감독을 맡은 누리영상단은 각종 실버 영상제에서 빼어난 성적을 내고 있다. 부산실버영상제에서는 1회 때부터 매년 빠짐없이 수상을 이어오는 중이다. 2013년 제6회 서울노인영화제 최고작품상, 2015년 제10회 정읍실버영화제 심사위원상도 받았다. 누리영상단은 <부산일보> 기자 출신의 이해원 단장과 의기투합해서 만들었단다.


이성용 씨가 한국자원봉사연합회에서 열린 행사를 촬영하고 있다. 박종호 기자 이성용 씨가 한국자원봉사연합회에서 열린 행사를 촬영하고 있다. 박종호 기자

건강 비결도 궁금했지만 등산과 걷기 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그는 “일이라기보다는 봉사를 하는 것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 계속 봉사할 생각이다. 지금 체력으로 봐서는 95세까지는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끝으로 인생 후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어딜 가서도 가장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누를 안 끼치고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라고만 말했다. 거듭된 간청에 “퇴직하고 집에서 쉰다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니다. 각자의 능력이나 재능에 따라서 취미 활동이나 사람을 만나면서 건강 관리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봉사활동을 하면 더욱 좋다고 강조했다. 100세 시대, 적어도 90까지는 계획이 있어야겠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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