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 이후 기존 보수 우위에서 크게 요동치고 있는 부산·울산·경남(PK) 민심의 변화가 <부산일보>의 최근 3개 지역 여론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불과 3년 전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압승을 안겼던 PK였지만,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가 접전 양상을 보이면서 ‘스윙 스테이트’의 특성이 크게 도드라졌다. 게다가 청년층에서는 국민의힘 대신 개혁신당이 더 높은 지지율을 차지하는 등 보수 지지층의 세대 간 분화 현상도 감지되고 있다. 여기에 도시 지역인 부산·울산과 도농 복합지역인 경남 민심의 ‘탈동조화’도 더욱 짙어지는 등 전통적인 정치 구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부산일보>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의뢰해 지난 24~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는 부산에서 42.3%, 김문수 후보는 43.1%를 기록하며 오차범위 내 초접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에서도 이 후보는 44.3%, 김 후보는 41%로 박빙 구도가 이어졌다. 경남에서는 김 후보가 49.9%, 이 후보가 38%를 차지해 비교적 큰 격차를 보였다.
이 같은 판세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당시와는 확연히 다르다. 당시 부산에선 윤석열 후보가 58.25%, 이재명 후보가 38.15%를 기록해 20%포인트(P) 이상 차이가 났다. 울산에서도 윤석열 후보는 54.41%를, 이재명 후보는 40.79%를 차지했고, 경남에서는 윤석열 후보가 58.24%로, 37.38%인 이재명 후보를 이겼다. 하지만 이번 여론 조사에서 격차가 상당히 좁혀지면서, 보수 일색이던 지역 판세가 새롭게 재편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주목할 부분은 PK 지역 보수층 일부가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 여론조사 결과 ‘보수 성향’이라고 응답한 유권자 가운데 13.3%가 이 후보를 지지했고, 국민의힘 지지층 중에서도 4.5%는 이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후보가 내세운 ‘우클릭 전략’이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중도·보수층 외연 확장을 위해 인물 영입에 집중했다. 보수 진영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을 공동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했고,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를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장으로 앉혔다.
같은 PK 권역의 3개 시·도이지만, 정치적 지형은 사뭇 달랐다. 부산과 울산은 동일하게 양대 정당 후보가 오차범위 내 접전 양상을 보였지만, 경남은 김 후보가 12%포인트 가량 크게 앞섰다. 특히 서부 내륙권을 중심으로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했다. 사천, 남해, 하동, 진주, 거창, 산청, 함양, 합천 등 서부권에서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50%를 넘었다. 다만 ‘낙동강벨트’ 지역인 김해, 양산 등 동부권은 민주당(41.1%)과 국민의힘(38.5%) 지지율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이와 함께 부산에선 세대별 변화도 두드러졌다. 부산의 20대 유권자 중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 지지율은 28.9%로, 국민의힘(20.3%)보다 높게 나타났다. 30대에서도 개혁신당은 14%를 기록하며 두 자릿수 지지율을 유지했다. 이는 계엄과 탄핵, ‘후보 강제 교체’ 논란을 일으킨 경선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누적된 2030세대의 실망과 불신이 반영된 결과로, 보수 내부에서 세대 교체 요구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지난 11일 부산을 방문한 자리에서 “부산 지역 당원 수가 굉장히 높게 올라가고 있다”며 “지역에서도 (정치인들이) 주도권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실망한 시민들의 마음이 개혁신당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은 부산에서 평균 45%의 득표율을 기록하고도 전체 18석 중 단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이후 정치 지형이 불안정해지면서, PK 지역에서도 진보와 보수 간 힘의 무게추가 움직이고 있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여론 흐름상 보수 진영이 더는 ‘텃밭’에 기대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여론조사는 부산일보 의뢰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4~25일 이틀간, 부산 지역 만 18세 이상 유권자 807명을 대상으로 무선 ARS(자동응답전화) 방식으로 실시했다. 울산은 802명(응답률 7.8%), 경남은 803명(응답률 7.5%)이 응답했다. 표본은 통신사 제공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해 무작위로 추출했으며, 응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4%P다. 가중값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기준으로 성·연령·지역별 셀가중을 적용했고, 전산처리는 SPSS 프로그램으로 이뤄졌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