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밖 몸은 조금 불편해도… 서로가 있어 마음은 행복하죠

입력 : 2025-06-09 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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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배·김은희 씨 서구청서 화촉
탈시설 5년 만에 ‘인생 2막’ 돌입
자립센터도 신혼집 마련 등 도움
“자립 장애인이 ‘보통의 삶’ 찾아”

지난달 24일 부산 서구청 신관 공공예식장에서 결혼한 김춘배, 김은희 씨 부부. 지난달 24일 부산 서구청 신관 공공예식장에서 결혼한 김춘배, 김은희 씨 부부.

지난달 24일 오후 부산 서구청 신관 공공예식장. 영화 〈노팅힐〉 음악으로 유명한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가 흘러나오자, 신랑 김춘배(51) 씨가 신부 김은희(49) 씨를 부축하며 식장으로 들어왔다.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침대형 휠체어에 누워있으면서도 둘을 축하해주러 식장을 찾은 장애인 동료들과 사회복지사 등 150여 명은 크게 환호했다. 춘배와 은희 씨가 살았던 시설의 원장도 결혼을 축하하러 왔다.

“두 사람의 미션은 가정을 심히 좋게, 원더풀, 퍼펙트, 뷰티풀하게 가꾸는 것”이라는 주례자의 말에, 둘은 “원더풀, 퍼펙트, 뷰티풀”이라고 재창했다. 이날 부부가 된 은희 씨와 춘배 씨는 2020년 40대 중반을 넘긴 나이에 시설에서 나와 독립생활을 한 탈시설 장애인이다. 은희 씨는 발달장애와 지체장애가 있고, 춘배 씨는 발달장애가 있다.

탈시설 5년 만에 둘은 가족을 꾸리는 인생 2막에 돌입했다. 같은 시설에서 지낸 적은 있지만 서로 잘 알지 못했고, 지역사회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관계가 발전했다. 어린 시절부터 인생 대부분을 시설에서 살아 기댈 가족이 없는 이들은 서로의 마지막 가족이 됐다.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는 춘배 씨는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고 싸우지 않고 지내겠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에게 정말 결혼해도 되는 거냐 물었다는 은희 씨는 “춘배 오빠는 내가 다리가 불편하면 잘 도와준다”며 “많이 사랑해 주고 챙겨주겠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2023년께 교제를 시작한 둘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결혼을 준비해왔다. 춘배 씨와 은희 씨의 생활을 보조하는 자립생활센터 두 곳이 각각 시댁과 친정 역할을 도맡아 결혼을 준비했다. 신혼집은 모아온 돈을 합쳐 빌라에 보증금을 대고 소박하게 마련했다.

은희 씨의 친정 역할을 하며 결혼식 화촉까지 한 함세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영숙 사무국장은 “예식을 어떻게 할지부터 신혼집 마련, 신혼여행 계획까지 (춘배 씨 측 센터와) 하나하나 조율해갔다”며 “한복 같은 것은 당근 중고 거래를 이용했고, 센터 직원의 소개로 스튜디오를 연계해 저렴하게 촬영하는 식으로 하나하나 발품을 팔았다”고 말했다.

올해는 정부가 탈시설 정책 로드맵을 수립하고 시범 사업을 진행한 지 4년째 되는 해이지만, 탈시설 정책에 대한 찬반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지난 2월엔 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을 위한 자립 기반 조성과 주거 전환 지원 근거를 담은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 및 주거 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는데, 부모회와 시설협회, 종교계 등을 중심으로 법률 폐지 요구가 잇따랐다. 의료와 간호 인력이 있는 시설에서 거주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탈시설이 정답처럼 여겨지면 시설에 남고 싶은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이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춘배, 은희 씨가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과정을 곁에서 지켜봐 온 이들은, 단지 탈시설이 맞냐 아니냐의 문제를 넘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제청란 부산장애인탈시설주거전환지원단장은 “시설에 생활하면서 결혼하는 경우도 있지만, 공동생활에서는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은희, 춘배 씨의 사례는) 장애인이 지역사회 자립을 통해서 보통의 삶을 찾는 기회를 만나고, 다양한 지원과 응원을 받으며 삶의 다양한 면을 발굴할 기회가 넓어진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글·사진=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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