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산업화한 사회에서 에너지는 인체에서 혈액과 같은 역할을 한다. 에너지 결핍은 국가 경제의 마비를 초래할 수 있는 재앙이 된다. 따라서 각국은 에너지 자원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편 세계 각국은 자국의 경제적·정치적 상황을 고려해 에너지 정책을 선택했고, 글로벌 현안에 발맞추어 자국의 에너지 정책을 수정하기도 했다.
2011년 동일본지진 당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여파로 일본뿐만 아니라, 독일 등 상당수 유럽 국가에서 탈원전이 국가 에너지 정책으로 결정됐다. 경제 대국 중에서는 독일이 탈원전을 가속화해 2023년 탈원전을 완료했다.
그러나 EU 내에서 산업생산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는 폴란드와 체코 같은 중동부 유럽 국가들은 탄소배출 감축과 전력수요 증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신규 원전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게다가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에너지 공급망 위기는 유럽에서 값싼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했었던 EU회원국이 정책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결정했던 이탈리아가 올해 3월 원자력 기술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을 승인했고, 벨기에도 지난달 15일 의회 의결로 탈원전 폐기를 공식화했다. 메르츠 총리가 이끄는 새로운 독일 연립정부는, 기존 독일 정부의 입장을 바꿔 EU 법률에서 원전을 재생에너지와 동등하게 취급하려는 프랑스의 노력을 더 이상 막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글로벌 현안 변화만큼 미국 등의 국가에서는 정권 교체가 에너지정책 변화의 큰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에서 전기자동차 세액공제 관련 정책은 정권마다 계속 바뀌어 왔다.
오바마 행정부는 전기자동차 이용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전기자동차 세액공제 정책(제조사별 20만 대 상한, 최대 7500 USD)을 실시했다. 그러나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입장을 180도 바꿔서 전기자동차 세액공제 정책을 폐기하려 했다. 2018년 11월 미국 중간선거 결과 미국 하원에서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어서 추진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바이든 행정부는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입법을 통해서 오바마 행정부의 전기자동차 세액공제 정책을 한층 더 강화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IRA를 폐지하려고 하고 있으며, 그 결과 지난달 22일 미국 하원에서 청정에너지 보조금 축소를 골자로 한 법안이 통과됐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IRA의 운명은 미국 상원의 결정에 따르게 됐다.
한국의 자동차기업과 배터리기업은 바이든 행정부의 IRA보조금 혜택을 받기 위해서 미국 내에서 생산시설 확충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IRA가 폐지되면 대규모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미국 네브래스카주를 잇는 키스톤XL 파이프라인는 2008년 3월 조지 부시 행정부(공화당) 때 추진했다가, 2015년 11월 오바마 행정부(민주당) 때 폐기됐다. 그러던 것이 다시 트럼프 1기 행정부 시기인 2017년 1월 재개됐다가, 2021년 1월 20일 바이든 대통령(민주당) 취임 첫날 행정명령으로 다시 허가가 취소되었으나 올해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첫날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바이든 행정부의 허가 취소 행정명령을 취소해 재추진했다.
알래스카 LNG 사업도 미국 정권 교체에 따른 불확실성이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미국의 에너지 독립과 아시아 수출 확대 전략의 핵심 사업 중 하나로 간주하며 알래스카 LNG 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기후 변화 대응, 야생동물 보호구역 환경 파괴, 알래스카 원주민 공동체와 환경 단체들의 반대 등을 이유로 2024년 1월 알래스카 LNG 사업을 중단시켰다. 미국 정권 교체에 따른 리스크와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의 막대한 비용문제, 카타르, 호주,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주요 LNG 공급국 대비 가격 경쟁력 문제로, 미국 기업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를 주저하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일본, 대만을 압박하며 알래스카 LNG 사업을 재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을 고려할 때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추진되었다가 바이든 행정부 때 폐기되었고 트럼프 2기 행정부 때 재추진되고 있는 알래스카 LNG 사업은 향후 미국 정권교체 상황에 따라서 지속 여부가 불확실하므로 투자에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권 교체 때마다 에너지 정책이 급변하여 불확실성이 초래되고 있는 미국의 상황은 6월 4일 새로운 정부가 출범한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도 주는 함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