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기술한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이 국민주권 국가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주권은 국가의 의사를 결정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궁극적인 권위를 나타낸다. 이러한 권위를 국민에게 귀속함은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주권은 공(公)법에 속하고 주인이라는 것, 혹은 그러한 소유권은 사(私)법에 속하기에 법학에서 둘은 엄밀히 구분된 영역이다. 그러나 ‘배제’하는 권리라는 궁극적 속성에서 둘은 공통점을 가진다. 즉, 주권과 소유권은 권리자 외에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지배권의 행사가 성립한다.
지배란 자신의 의사를 강제하는 행위다. 반대로 지배받는다는 것은 내 의사가 아닌 의사를 강제받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법의 지배를 받는다. 법치는 법의 의사를 모두에게 강제하고 모두가 법 앞에서 평등해지는 강제행위다. 국민뿐만 아니라 국가도 법의 지배를 받는다. 국가의 의사를 강제하는 행위가 법에 근거하지 않을 때 국가의 지배는 불법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강제하는 행위는 합법적일 때에만 정당한 지배라고 인정된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대한민국
국가는 국민들의 공동소유 대상
누구도 특권적 국가 소유 안 돼
삼권분립도 국민이 위임했을 뿐
국민주권 대상서 타국민은 배제
따라서 '식민지배=불법' 성립돼
지배는 물건에 대하여 지배관계를 정하는 물권과 연관 지어볼 수 있다. 본 글에서는 물권 중 소유, 점유, 공유라는 개념구분을 살펴보려 한다. 점유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는 영미법 체계에 근거하여서 대륙법 체계 구분과 약간 다를 수 있다. 소유는 물건을 전면적으로 지배하는 것이며 점유는 물건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상태다. 공유는 2인 이상이 한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다. 예컨대 볼펜이 하나 있다고 하자. 볼펜이 나의 것이고 내가 사용하고 있다면, 볼펜은 나의 소유물이다. 나의 볼펜을 사실상 철수가 사용하고 있다면, 볼펜은 철수의 점유물이다. 나와 철수가 볼펜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면, 볼펜은 나와 철수의 공유물이다.
소유권은 물건을 사용, 수익, 처분할 수 있는 전면적인 지배권리와 함께 소멸시효가 없는 항구적인 권리다. 점유권은 물건, 영역, 지위 등을 실질적으로 차지한 상태로부터 파생된 권리이며 점유기간에 한하여 인정된다. 공유권은 지배권을 공동으로 가지기에 특정한 권리자가 독점할 수 없다. 세 지배형태에서 구분되는 개념적 특징을 참고삼아 국민주권의 의미를 해석해보면 흥미로운 논의가 열린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런데 어떤 국민을 말하는가. 한 국가의 개별적인 국민 한 명도 국민이고 국가의 모든 국민을 묶은 추상집합적 국민도 마찬가지로 국민이다. 개별 국민과 집합 국민, 두 국민의 공통점이 있다면 국가를 소유하지 않는 국민이라는 것이다. 개별 국민과 집합 국민은 모두 국가의 실질적인 주인으로서 점유권자다. (동시에 대륙법 체계상 점유를 정당화하는 법률권리인 본권을 가지기에 제한물권에도 해당한다.) 또한 국가를 공동으로 소유함으로써 누구도 특권을 가지고 독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유권자다. 전면적이고 항구적인 지배형태로 국가를 소유하는 무언가 존재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국가를 언제라도 지배하는 오직 법뿐일 것이다.
〈법의 정신〉에서 몽테스키외는 법을 ‘사물들의 본성에서 생기는 필연적인 관계’라고 정의한다. 헌법이 국가의 본성에서 생기는 필연적인 관계라면 민주공화국의 본성은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으며 항상 점유되고 공유된다는 점이다. 특정 주체가 국가에 대한 소유를 말할 때 이는 법의 정신에 어긋난다. 예컨대 선출권력이 국민의 이름으로 국가에 대한 전면적인 지배를 주장할 때 이는 오히려 불법이 된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인 삼권분립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구성된 권력이 동등하게 국가권력을 공유하고 있는 제도로서 공동의 지배권을 가지기에 상호 견제할 수 있다. 권력의 선출과 임명 역시 국민이 위임한 점유권력이다.
민주정의 지배관계는 국가에 대한 소유권을 지우고 국민에게 점유권과 공유권을 부여함으로써 모든 국민을 주인으로 만든다. 〈통치론〉에서 로크가 국가를 시민사회의 ‘수탁자’로 구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신탁계약의 세 주체인 위탁자, 수탁자, 수익자를 떠올려보면, 최초의 건국자(사회계약 설정자)를 위탁자로, 국가를 수탁자로, 건국 이래 모든 국민을 수익자로 고안한 것이다. 신탁에서 법적 소유권을 갖는 수탁자는 국가 자체로 하고 수익자인 국민에게 실질적 소유권인 점유권과 공유권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하면 누구도 독점하지 않기에 모두가 주인이 된다.
한편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것은 자국민과 타국민을 구분하고 권리자 외에 타자를 배제함으로써 지배권 행사를 자국민으로만 한정한다. 따라서 국가에 대한 타국민의 지배를 주권침해로 판단하고 식민지배가 불법이 된다는 점에서도 국민주권은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명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