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울 가느라 4조 원… 지역 의료 살려야 할 이유

입력 : 2025-06-17 0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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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원인 불명 땐 불편·비용 감수 서울행
국립대학병원 역량 강화 환자 신뢰 얻어야

지난해 의대 증원을 둘러싼 파행 끝에 전국 병원의 응급실과 중환자실이 마비 직전까지 이르렀다. 그 와중에도 수도권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현상은 멈추지 않았다. 지역의 공공·필수 의료체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이면에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의료 인력과 시설, 서비스 수준의 차이와 함께 지역민의 신뢰 부족까지 혼재되어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하 보사연)의 연구에 따르면 지방 환자가 서울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하면서 발생하는 비용이 연간 4조 6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환자 쏠림은 국가적 비효율과 지역 불균형 영구화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국정과제 수준의 접근법과 대책이 필요하다.

보사연이 15일 공개한 ‘지역 환자 유출로 인한 비용과 지역 국립대학병원에 대한 국민 인식’ 보고서는 국가 의료체계의 고질병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역민들은 수도권과 지역 간 의료 격차가 ‘심각’(81.2%)하고, 지방의 의료서비스가 ‘미흡’(59.6%)하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 때문에 경증질환은 지역 국립대학병원을 이용(54.1%)하지만, 중증질환(43.5%)은 반 이하로 떨어졌다. 또 응급 상황은 지역 병원(69.4%)을 찾는 비율이 높았지만 병인을 모를 때는 45.1%에 불과했다. 즉, 중증이거나 원인을 알 수 없을 때는 불편과 비용을 감수해서라도 서울로 가는 비율이 늘어난다. 이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이 의료 개혁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지역 국립대학병원은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당 지역의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되어 중증·응급·희소·난치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문제는 필수의료 공백에다 수도권과의 격차로 지역민 상당수가 여전히 서울로 ‘원정 진료’를 불사하고 있다. 보사연은 교통·숙박비(4121억 원) 외에 진료비 차이(1조 3416억 원), 지역에서 치료하고 바로 업무에 복귀했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기회비용(2조 8733억 원)을 모두 합하면 연간 4조 6270억 원의 순비용이 발생한다고 추산했다. 지역 의료체계에서 선순환되었으면 막을 수 있었을 국가적 낭비다. 지역의 공공·필수 의료체계가 굳건해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방 환자의 서울행에 따른 인식과 비용 조사에서 도출되는 해법은 명백하다. 국립대학병원을 지역 의료의 ‘중추 기관’으로 개편하고 역량 강화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보사연 조사에서도 정부의 적극 지원(80.9%)이 압도했고, 지원 분야는 ‘인력 확보’(81.0%)와 ‘응급 진료 역량 고도화’(80.5%), ‘중증질환 진료 역량 고도화’(80.1%), ‘필수진료과 확충’(78.6%) 순으로 꼽혔다. 이 응답이 시사하는 바는 ‘원정 진료’가 겉으로는 지역민의 선택으로 보이지만 실은 내몰린 것이나 다름 없다는 점이다. 지역민도 마음 놓고 지역에서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지역·공공·필수의료 중심의 의료체계 대수술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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