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의 곰곰 생각] 국민주권정부 주민주권 시대 이끌어야

입력 : 2025-06-19 17:56:17 수정 : 2025-06-19 17:5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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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역대 정권 정체성 담은 명칭 사용
새 정부, 주권재민 헌법 가치 내세워

수도권 집중·지방소멸 ‘주권’ 불균형
지방 분권 없으면 형식적 구호 우려

지역 주민 스스로 미래 결정해야
주민주권 실현될 때 국민주권 완성

새 정부는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한다. 지난 4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취임 선서’가 있었지만 이와 별도로 ‘대통령 임명식’을 갖겠다는 발상과 같은 맥락이다. “국민이 대통령을 임명한 것”이라며 ‘주권자 국민’의 역할을 강조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12·3 비상계엄령이 초래한 헌정 위기를 국민의 힘으로 바로잡았다는 의미, 즉 국민이 주권을 되찾았다는 상징성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역대 정부는 정체성과 지향을 담은 명명을 통해 시대적·정치적 의미를 드러내 왔다. 김영삼 정부의 ‘문민정부’는 32년간 이어진 군부 시대의 종식을 상징한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로 탄생한 김대중 정부는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강조하기 위해 ‘국민의 정부’를 자처했다. 그 뒤는 모든 국민이 민주주의의 주체로 참여하는 것을 지향한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시대’라는 명칭이 있었지만 국민적인 참여로 진행된 촛불 시위로 탄생한 점에서 ‘촛불정부’로 통칭됐다.

이재명 정부는 정치적 구호가 아닌 헌법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는 주권재민의 원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 가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심각한 공간적 불균형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서 보면 국민주권의 실현에는 심화 과제가 보태진다. ‘국민’이 어느 지역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주권’이 불균형하다면 국민주권주의에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어서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이라는 현실이 국민주권주의를 형식적 구호에 그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수도권에 인구·행정·정치·경제가 집중되며, 실질적으로는 ‘수도권 주권’ 체제가 고착됐다는 비판이 어제오늘 나온 게 아니다. 역대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지방 시대’ 등 화려한 구호가 걸렸지만 비수도권 국민에게는 번번이 ‘희망고문’으로 끝났다. 수도권 기득권이 공고한 탓이다.

예를 들어 1948년 제헌의회 200석 중 수도권(서울, 인천, 경기)은 32석으로 16%에 불과했다. 지금은 전체 지역구 의석의 약 48%다. 이제 수도권의 이익을 침해하는 국토균형발전 법안은 입법부를 넘기가 어렵게 됐다. 수도권 성역화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에 본점 소재지를 둔다’는 산업은행법 조항을 ‘부산에 둔다’로 개정하겠다고 대통령이 공약해도 기득권의 저항에 부딪혀 무산 위기에 처하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국민주권은 국민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는 의미다. 그런데 지역에 한정해서 보면 지역 주민은 지역의 미래를 결정할 수가 없다. 중앙정부의 재정과 정책 결정권에 예속되어 있어서다. 자치 행정 이외의 재정·교육·의료·산업 정책에서 지자체는 무기력할 뿐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의 격차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됐다. 서울이 지방의 생사여탈권을 쥔 불균형 구조가 지속된다면 국민주권 구호는 공허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방이 주체가 되어 정책을 설계하고 재원을 집행하는 지방 분권이 실현돼야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이 평등해진다는 주장은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가 된 지 오래다. 중앙정부 주도의 하향식 국가운영전략이 효율적이지 않고, 지역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원동력으로 국가 경쟁력을 키울 때가 됐다는 하소연도 귓등으로 흘리고 만다. 공공 기관의 찔끔 이전이나 인프라 개발 정도의 시혜성 조치만 반복되는 사이 지방은 소멸의 가속도가 붙고 있다.

1995년 6월 27일 민선 지방자치가 시작된 이래 정확히 3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지방에는 자치가 없고 주권도 없다. 주민주권을 국민주권의 지역적 구현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 자치복지권 등 4대 지방자치권을 담은 개헌안이 국회에 제출됐지만 국민투표는커녕 국회 문턱도 못 넘고 폐기된 것처럼 지방 분권은 강고한 중앙 집권의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게 현실이다.

주민주권과 국민주권이 상충 관계로 인식되는 이 지점이 이재명 정부의 출발점이다. 주민주권과 국민주권은 상호 보완적 관계여야 한다. 주민주권의 실현으로 국민주권이 완성된다는 의미다.

그래서 국민주권정부가 주민주권 시대를 선도하는 것은 시대적 사명이다. 이재명 대통령 재임 기간이 지방소멸을 반전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돌파할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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