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루 대부분을 소아암 환자들과 함께 보냅니다. 제 신체의 일부가 그 아이들에게 일상 회복의 일부가 된다면, 그 자체로 아주 큰 보람이에요. 나눔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내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고 따뜻한 실천이 아닐까요.”
소아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인 동시에 아이들을 위해 10여년 간 꾸준히 머리카락을 기부해 온 이가 있다. 바로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소아혈액종양클리닉 양유진 교수다.
전북대에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2015년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온 그는 “소아암 환자들과 평생 함께 하겠다는 마음으로 소아혈액종양 분야를 세부 전공으로 정했다”고 말하며 “이런 결정과 동시에 머리카락 기부도 시작됐다”고 전했다.
전공의 시절부터 소아암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큰 스트레스로 느끼는 것을 봐왔다는 양 교수는 “특히 저의 긴 머리를 부러워하던 여자아이들에게 ‘선생님 머리 잘라서 줄까?’라는 말을 장난처럼 한 적도 있었는데, 언젠가 한 아이가 인모 가발이 비싸다는 말을 해줬고, 그 순간부터 진지하게 기부를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소아암 전문의의 길을 가기로 선택하고 나니, 어린 소아암 환자들에게 ‘일상의 조각’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환자를 치료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신체 일부를 기꺼이 내어놓는 마음은 어떤 걸까. 그는 “의사이기도 하지만 병원에서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고 운을 뗐다. “아이들은 치료와 동시에 가장 먼저 학교, 친구,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리고, 그 다음으로 외모 변화, 특히 탈모를 겪으며 크게 힘들어 한다”면서 “제 머리카락이 그런 변화 앞에 놓인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일상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양 교수는 스스로 “긴 머리를 동그랗게 말아올린 헤어스타일이 제 트레이드 마크에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20대부터 쭉 길러온 머리카락을 그는 1~2년마다 싹둑 잘라내, 잘 모아 묶은 뒤 비닐백에 넣어 ‘어머나 운동(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 운동)’ 측에 등기나 택배로 보낸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송장번호를 입력하면 기증서를 받을 수 있는데, 양 교수는 4장의 기증서를 갖고 있다.
그는 “예전에는 염색이나 파마를 하면 안 되고, 최소 30cm 이상 길러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웠는데, 요즘은 기준이 완화돼 25cm 이상이면 시술 여부와 관계 없이 머리카락 기부가 가능해졌다”면서 “특별히 머릿결을 관리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머리 감고 빠진 머리카락도 뭉쳐서 보내주시면 기부가 가능하니, 많은 분들이 부담 없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양 교수의 선한 영향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년째 매달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에 후원금을 보내고 있으며, 병원 내 혈액원에 방문해 기회가 될 때마다 헌혈도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동료 의사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카락을 기부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제 환자니까요, 나누는 게 당연합니다”라고 말하는 양 교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계속 아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신을 밝혔다.
더불어 양산부산대병원이 매년 소아암 환자 희망 캠프, 완치 축하 파티 등을 마련하고 있다며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같은 특별한 날에는 소아청소년암 진료체계 구축사업, 병원 후원회와 함께 다양한 선물도 전달하고 있고, 올해는 미술 체험, 쿠킹 클래스 같은 소규모 문화행사도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꼭 머리카락을 기르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하지만 우리가 무심코 넘기는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세상일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걸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주 특별한 경험이 될 거예요.” 양 교수의 마지막 말이 마음을 울린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