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지역에 배포된 민생회복 소비쿠폰 선불카드에 충전 금액이 적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여부가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카드에 금액을 명시한 선불카드를 두고 “인권 감수성이 매우 부족했다”며 시정 조치를 지시했다.
23일 부산시에 따르면 각 구·군 동별 행정복지센터에 배부된 민생회복 소비쿠폰 선불카드(이하 선불카드) 상단에는 충전 금액이 표시돼 있다. 통상 18만 원이 적혀 있으나, 차상위계층과 기초생활수급자가 받는 선불카드에는 각각 33만 원, 43만 원이 적혀 있다.
행정적으로 카드 배부 시에 잘못된 배부를 막기 위한 장치였지만, 금액별로 이용자의 경제적 수준을 유추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가게에서 선불카드를 건넬 때, 누구나 금액을 보고서 차상위계층, 기초생활수급자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날 강서구 대저1동행정복지센터에 선불카드를 발급받으러 온 김 모(43·강서구) 씨는 “내 살림살이가 어떤지 누가 알아볼 수 있다는 게 굉장히 불편하다”며 “마음 놓고 쓰지 못하게 만들 거면 왜 만들었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처럼 카드에 금액이 적힌 지자체는 부산을 포함해 전북 순창군, 충북 충주시, 충남 아산시 등이 있다.
부산의 경우 현장에서 바로 민생지원금을 충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미리 선불카드에 금액을 충전해 배포하는 방식을 택했다. 행정복지센터 공무원이 직접 금액을 충전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 부산은행으로부터 선불카드 실물을 제공받는다.
반면 서울시는 지난 16일 신한은행과 업무협약을 맺어 행정복지센터에서 신한은행 프로그램에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공무원이 주민 신청서를 보고 민생지원금을 실시간으로 충전할 수 있는 덕분에 선불카드에 금액 표시가 없다.
카드에 금액이 게재된 것이 논란이 되자 대통령까지 나서 개선을 지시했다. 이날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민생회복 소비쿠폰 관련 브리핑에서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선불카드 구분에 대해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자 인권 감수성이 매우 부족한 조치라며 즉각 바로잡으라 지시했다”고 밝혔다.
부산 지역에는 현재 80만 장의 선불카드가 제작됐으며, 이미 절반 넘게 지급됐다. 남은 선불카드는 부산 16개 구·군에 보관 중이다. 당초 부산시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었지만, 이 대통령 지시 이후 적극적인 조치를 약속했다. 24일부터 배포할 선불카드에 금액을 가리는 불투명 스티커를 붙일 예정이다.
부산시 중소상공인지원과 관계자는 “차별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다음 주부터 지급될 선불카드는 부산은행, BC카드와 논의해 문제점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김재량 기자 ry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