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금 ‘뚝딱’ 연금술 성공…금값 대폭락?

입력 : 2025-08-16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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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입자물리연구소, 납을 금으로 변환
미국 스타트업 “핵융합으로 생산 가능”
과학 발전에 ‘불가능한 꿈’ 마침내 이뤄
채산성 높여 상용화 땐 금 가치에 영향

금은 매우 특별한 금속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금은 귀금속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인들이 금으로 투구를 만든 데 이어 세계 전역에서 최상위 지배 계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왕관과 팔찌 등의 제작에 금을 사용했다. 금을 신성하게 여겨 궁전이나 신전을 금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금은 인류 역사를 바꾼 금속이기도 하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스페인 왕실의 후원으로 1492년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는 등 15~17세기 유럽에 대항해시대 열풍이 분 것도 ‘황금 제국’을 발견하려는 열망에서 기인한다. 금은 오늘날까지도 세계 화폐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기도 하다. 통용 화폐들은 기본적으로 금본위제에 의해 그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 밖에 의료와 전자공업 등 많은 분야에서 금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골드바. 부산일보DB 골드바. 부산일보DB

인류는 고대부터 흔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연금술을 성공시키기 위해 끊임없는 시도를 이어왔다. 특히 중세 들면서 연금술이 크게 유행했다. 이후 실증적인 과학적 방법론이 도입되면서 연금술은 점차 퇴색됐다. 과거의 연금술은 실제로 금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화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최근 납 등을 활용해 금을 만들어내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인류가 고대부터 갈망하던 연금술이 우연이 아닌 정교한 연구 계획에 의해 결실을 거둔 것이다. 다이아몬드의 경우 인공 다이아몬드가 시장에 나오면서 희소성 하락으로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이제 금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유럽입자물리연구소, 납을 금으로

인류 최초로 연금술사들의 꿈을 현실화시킨 곳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CERN은 주로 거대한 입자 가속기를 포함한 고도의 과학장비를 이용해 여러 가지 실험과 관찰을 진행한다. 이곳의 연구진은 프랑스에 설치한 거대강입자충돌기(LHC)를 통해 납을 금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연구결과를 지난 5월 국제학술지인 '물리학 리뷰 저널(Physical Review Journals)'에 발표했다. 납을 금으로 바꾸는 과정을 실험적이고 체계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는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거대강입자충돌기. 연합뉴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의 거대강입자충돌기. 연합뉴스

LHC는 지하 100m 아래 설치된 거대 과학 실험 장치로 가속 터널 길이가 27km에 달한다. 입자를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시켜 충돌 때 발생하는 물리 현상을 탐구하는 최첨단 장비이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다. 양성자와 중성자, 전자가 몇 개인지에 따라 원자의 성질이 달라진다. 납은 82개의 양성자, 금은 79개의 양성자를 갖고 있다. 이런 특성을 고려해 CERN 연구자들은 LHC를 통해 빛에 가까운 속도로 납에 광자 빔을 충돌시켜 3개의 양성자를 방출하도록 했다. 그 순간 납이 금으로 변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2015~2018년 실시한 충돌 실험을 통해 860억 개의 금 원자핵(약 29조 분의 1g)이 생성됐다고 계산했다. 금 원자의 대부분은 약 1마이크로 초(백만 분의 1초) 동안 짧게 존재했다. 게재된 논문에서 연구진들은 "납을 금으로 바꾸는 것은 중세 연금술사의 꿈"이라며 "LHC에서 이 꿈이 실현됐다"고 밝혔다.

비록 연금술사들의 꿈은 이뤘지만 이 실험 결과의 미래 가치를 무조건 낙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연구 결과가 전해지자 지구촌에서는 인류 역사와 함께 한 ‘금 불패 신화’가 이제 막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도 일각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충돌 실험을 통해 얻은 금의 양이 극히 미미한 데다 이마저도 불안정해 이내 다른 입자로 분해됐다. 반면 LHC 운용에 소요되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전기 비용만 수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즉, 연금술을 구현했지만 경제성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이다. 따라서 LHC의 이번 성과가 당장 국제 금 가격 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입자가속기 내부. 길이가 27km에 달한다. 연합뉴스 유럽입자물리연구소 입자가속기 내부. 길이가 27km에 달한다. 연합뉴스

■ 핵융합 기술, 수은을 금으로

지난달 미국의 한 스타트업 기업이 핵융합 기술을 이용해 수은을 금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에너지 뉴스 매체인 에너지 리포터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자리한 ‘마라톤퓨전’이 핵융합 기술을 이용해 수은을 금으로 변환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마라톤퓨전은 핵융합로 내부에서 수은-198 동위원소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는 방법을 사용하면 금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성자 충돌로 수은-198은 수은-197로 변환되고, 다시 이 수은-197은 며칠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안정적인 형태의 금인 금-197로 변한다는 것이다.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 위치한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인 인공태양(KSTAR) 진공 용기의 모습. 연합뉴스 대전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 위치한 초전도 핵융합연구장치인 인공태양(KSTAR) 진공 용기의 모습. 연합뉴스

더욱이 마라톤퓨전은 이 방식을 사용하면 1기가와트(GW)급 핵융합 발전소에서 연간 최대 5.4t의 금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5억 5000만 달러 이상에 달한다. 이 업체는 “이 방법이 대규모로 확장 가능하고, 실용적으로 달성 가능하며, 경제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기술이 실현될 경우 일반적인 핵융합 발전소의 수익을 거의 두 배로 늘려 핵융합 에너지를 단순한 청정에너지 대안을 넘어 경제적으로도 매우 매력적인 대안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도 이어진다.

마라톤퓨전이 발표한 논문은 아직까지 전문가들이 논문을 평가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동료심사’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조금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또 이렇게 생산된 금은 방사성 물질이기 때문에 안전성을 위해 14~18년 정도 보관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핵융합 발전소는 전력을 생산하면서 부산물로 금을 대량 생산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기존 금의 가치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 눈부신 기술 발전, 금의 미래는?

금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가장 큰 이유는 희소성이다. 유통되는 금의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공급 과잉에 따른 폭락 우려가 적어 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한국거래소 기준 국내 금값은 3.75g(한 돈)당 56만 1788원. 2014년에는 17만 원 대에 거래됐다. 금은 인플레이션 등 경기 변동에 대비하는 헤지 기능뿐만 아니라 투자 측면에서도 ‘불패 신화’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내구성이 강해 오랜 세월이 지나도 물성이 변하지 않는다.

금이 희소성을 현재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금을 얻으려면 땅에서 캐내거나 사금을 채취하는 등 여전히 전통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금협회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현재까지 채굴된 금의 양을 21만 6265t으로 추산한다. 채굴된 금의 대부분은 귀금속으로 가공돼 개인, 기업들이 갖고 있거나 각 나라 중앙은행과 금융기관들이 보관하고 있다. 경제성을 가진 미 채굴 상태의 금은 5만 4770t에 달한다. 1년 평균 지구에서 채굴되는 금의 양은 3t 내외로 추정된다. 이 속도로 향후 15년가량이 지나면 더 이상 전통 방식으로 금을 생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물론 금은 지구 곳곳에 널려있다. 심지어 바닷물에도 섞여있다. 문제는 경제성이다. 예를 들어 바닷물의 경우 100만t당 약 6g의 금이 포함되어 있지만 채산성을 맞추려면 한층 획기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값싼 물질을 금으로 변환하는 ‘연금술 방식’의 금 생산 방식, 채산성이 떨어지는 장소인 심해 등에 매장되어 있거나 바닷물에 미량 포함된 금을 경제적으로 채굴하는 기술 등의 등장과 상용화는 이미 예고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와 마라톤퓨전이 전한 소식은 그 서막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다만 실제로 금을 인위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국제 협약을 통해 금 생산량을 조절할 가능성이 높다. 무분별한 생산으로 금의 희소성이 흔들릴 경우 금본위제에 근거한 기존 화폐 체계 등도 큰 충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금술’의 채산성을 높이려는 도전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금이 언제까지 ‘희소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무게 200kg인 세계 최대 금괴. 일본 시즈오카현 토이 마을의 토이 금광에 전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무게 200kg인 세계 최대 금괴. 일본 시즈오카현 토이 마을의 토이 금광에 전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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