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중년 여성이 405일간의 항해를 어떻게 혼자서 해 낼 수 있었을까. 그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연 속에서 삶의 소중함을 배우며 자랐다고 했다. 할머니는 “여자라고 기죽지 말고, 남자 열 몫하고 살아라”라고 늘 이야기했다. 영화나 책을 읽고 나면 주인공이 된 것 같은 환상에 빠졌고, 그 장소에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체험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체질이었다.
각종 레저스포츠 활동사항을 기록한 프로필이 범상치가 않았다. 1987년 스키·스노우보드 마스터-1990년 스킨스쿠버 오픈워터 자격(현재 마스터)-1991년 승마-2001년 패러글라이딩 미리네팀 창단-2001년 아마추어 무선사-2009~2012년 디지털 영상제작과정 고급과정-2010년 요트 면허, 조종면허1종(보트), 해기사(소형선박) 자격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일찍부터 차근차근 준비했기에 장기 항해가 가능했던 것이다.
공무원이었던 김 선장의 남편 이야기는 가슴이 아팠다. 남편은 퇴직하면 알래스카에 가겠다고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퇴직 1년을 남겨놓은 2014년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집안의 큰아들로 효자였고, 아내에게는 레저를 적극 권했던 자상한 남편이었다. 무엇보다 이 지구상에 단 한 사람뿐인 존재였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김 선장은 농담처럼 “노후에 요양병원에 가서 투병할 돈이 있으면. 가불해서 내가 먼저 써야 한다”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는 책의 서문에서 ‘우리는 모두 삶의 바다에서 각자의 파도와 싸우고 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넘어서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적었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