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은 ‘해양수도 부산’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다. 그러나 단순히 청사를 옮기는 것만으로는 도시의 미래 비전을 뒷받침하기 어렵다. 부산이 진정한 글로벌 해양 허브로 도약하려면 산업·인재·재정·국제협력까지 아울러 지원할 수 있는 종합적인 법적 ‘틀’이 필요하다. 이른바 ‘해양수도특별법’ 제정이 핵심 과제로 언급되는 이유다.
부산을 해양수도로 만들기 위한 입법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국회는 2005년 ‘부산해양특별자치시 설치 및 발전 등에 관한 특별법안’, 이른바 ‘해양특별자치시법’을 발의해 법안소위와 상임위까지 올렸으나 결국 부결됐다. 2007년과 2008년에도 일부 정치권의 반대로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고, 2009년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이후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해양경제특별구역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2020년 ‘부산해양특별시 설치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처럼 해양수도특별법 제정은 부산의 오랜 숙원으로, 이재명 대통령과 전재수 해수부 장관의 강한 의지가 뒷받침되는 지금이 적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국회에는 성격이 다른 두 가지 법안이 상정돼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선 의원 안은 △이전 기관의 이전 계획 수립 △이전 비용 보조 △공무원 주거·교육 지원 등 정주 여건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안은 △해양산업특화 혁신지구 지정 △지자체-산업계-대학 간 협력 체계 구축 △해양 전문 인력 양성 △외국인 투자 유치 △스마트항만 기반 조성 등 산업 생태계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지역 사회에서는 두 안의 장점을 아우른 통합 법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시는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추진 경험을 갖고 있다. 이 법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 차원의 위원회를 설치해 5년 단위 종합계획과 연차별 시행계획을 수립·심의하고, 규제 특례와 특구 지정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았다. 항만·물류·금융·첨단산업을 국가 전략사업으로 추진하는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해양수도특별법과 연계해 부산 북항에 해양특화 첨단산업단지, 해양금융복합타운, 해양행정타운 등을 조성한다면 글로벌 금융 중심지 위상 강화와 관광·문화 기반 확충이 가능하다. 동시에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집적 효과로 HMM 본사 등 해양 전문 기업 유치, 지역 경제 활성화,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다.
북극항로 전략도 특별법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핵심 과제다. 북극항로는 향후 10~20년 내 동북아 물류 판도를 뒤흔들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여름철에는 기존 유럽항로보다 운항 거리가 약 40% 단축돼 물류비 절감 효과가 크며, LNG와 자원 수송의 주요 루트로도 주목된다. 정부도 북극항로 개척을 미래 성장축으로 삼아 항만·연료공급시설 확충, 거점항만 개발, 친환경 선박 연료 설비 구축 등을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그러나 계절적 제약, 기술 부족, 친환경 연료 전환 등 난제가 여전해 법적·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 쇄빙선 건조, 극지 전문 인재 양성, 해상보험·금융 지원 등 종합 대책을 특별법에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극항로 개척은 이미 이재명 대통령의 부산 핵심 공약으로,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의 123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포함됐다. 전재수 해수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2030년 북극항로 활성화에 대비해 정부 기관과 해운 기업, 조선 인프라를 부산·울산·경남에 집적화하고 동남권 투자공사도 유치해 서울·수도권에 이은 성장 엔진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특별법이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교한 법안 설계가 필요하다. 특별법에 해양산업특화 혁신지구 지정 근거를 명문화해 조선·해운·플랜트·친환경 연료 등 분야별 집적을 지원하고, 규제 완화와 특례로 해외 기업 유치를 끌어올릴 수 있어야 한다. 지역 대학과 연계한 계약학과 설립, 장학생 제도, 국제 연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인재 양성을 강화하고, 국무총리 직속 해양수도 추진위원회를 설치해 관계 부처·지자체·민간이 참여하는 분과위원회 체제로 운영하는 내용도 포함할 필요가 있다. 또 민간기업 이전을 촉진하기 위해 세제 감면, 국공유재산 장기 임대, 정주 지원 패키지를 함께 담을 필요가 있다.
세종특별자치시법, 제주특별법 등은 중요한 참고 사례다. 세종은 특별법을 통해 특별회계 설치와 단계별 개발계획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제도화했고, 제주는 자치권 확대와 규제 특례를 법으로 보장받았다. 이처럼 부산판 특별법은 단순한 이전 지원을 넘어 산업 생태계와 성장 동력을 결합하는 법적 기반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나아가 권한과 예산, 인재를 포괄하는 국가 전략 법안으로 발전할 때 해양수도특별법이 비로소 실질적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