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개막한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열기가 점점 깊어지면서, 우리 동네에서 펼쳐지는 BIFF를 표방하는 ‘동네방네비프’도 영화제의 ‘세례’를 부산 곳곳에 퍼뜨리고 있다.
동네방네비프는 BIFF가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이라는 공간에 한정된 영화인만의 행사가 아닌 산과 바다, 산복도로 등 부산 전역의 개성 있는 공간에서도 펼쳐져 많은 시민이 일상에서 축제처럼 영화를 만날 수 있도록 기획됐다. 올해 동네방네비프의 키워드는 ‘바람길’(Wind Path)로, 행사 기간 부산 전역이 영화관으로 변신해 시민들을 영화제로 초대한다.
지난 19일 오후 7시 30분 부산 영도구 모모스커피 영도 로스터리 앤 커피바에서 동네방네비프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영도 로컬 커뮤니티의 공연에 이어 상영작으로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의 2008년 작품 ‘걸어도 걸어도’를 선택한 모모스커피의 최정은 바리스타가 커피와 영화를 주제로 관객들과 대화했다. 최 바리스타는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바쁘게 지내다 보면 문득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인지 떠올리면서 무력감을 느낄 때도 있다”며 “이 영화를 보면서 특별한 의미 없이 그냥 묵묵히 살아가는 것이 지닌 가치와 함께 삶에 감사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최 바리스타는 이 영화가 ‘꾸준히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보통의 삶에 대한 응원이 담긴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영화와 어울리는 커피를 추천해달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같은 영화도 보는 사람에 따라 느낌과 감동이 다르듯이 같은 원두로 만든 커피도 마시는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다”면서도 “꾸준히 하루하루를 잘 살려면 제철 음식을 잘 챙겨 먹어야 하듯이 이 계절에만 맛볼 수 있는 원두로 만든 커피가 영화와 잘 어울릴 것 같아 여름용 블렌드인 ‘와이키키’와 가을 원두인 ‘가을 온기’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관객 70여 명은 밤이 깊도록 커피 향이 밴 공간에서 일상과 닮은 영화를 즐겼다.
앞서 이날 오후 6시 30분부터 부산 동구 산복도로에 위치한 168 더 데크에서도 동네방네비프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조선호 감독의 영화 ‘청설’이 배리어프리(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영상 해설과 자막 제공) 버전으로 상영됐다. 청설은 수어를 통해 이뤄지는 소통의 본질과 사랑의 진정성을 다룬 작품으로 이날 프로그램에는 농아인 10여 명도 관객으로 특별 초청됐다.
관객들은 영화 상영에 앞서 영화 속 주요 장면에 등장하는 수어 표현을 직접 배워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조선호 감독과 함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관객과 소통했다.
50여 명의 관객들은 산복도로와 부산항 북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계단식 좌석에 앉아 아름다운 부산의 밤 풍경 속에서 영화를 함께 즐겼다. 조선호 감독은 “시민들의 일상이 담긴 장소에서 함께 영화를 보며 여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것이 부산국제영화제 동네방네비프만의 매력”이라며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소외된 사람이 없도록 지역에서도 배리어프리 방식으로 상영회가 마련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올해로 세 번째 동네방네비프에 참석했다는 강준기(42·경남 김해시) 씨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영화를 매개로 교감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여서 참석했다”며 “큰 영화관에 가지 않아도 지역 주민들이 영화와 함께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동네방네비프를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전날(18일) 음악 영화 블루 자이언트가 상영됐는데, 사전 공연으로 ‘허밍프로젝트’ 밴드의 재즈와 보컬이 어우러진 라이브 무대가 펼쳐졌다. 이어진 무대에서는 모그 음악감독이 관객들과 OST 제작과 재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틀 동안 168 더 데크에서 진행된 동네방네비프 프로그램은 사전 신청을 받았는데, 정원 100명에 대한 예약이 금방 마감될 정도로 높은 인기를 보였다.
2025 동네방네비프는 오는 26일까지 부산 9개 구·군과 경남 양산시(부산대학교 어린이병원), 서울(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등 15곳에서 32편의 영화로 시민들과 만난다. 이 기간 영화 상영(39회), 게스트와의 만남(GV, 7회), 공연(6회) 등이 펼쳐진다.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