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BIFF 경쟁부문 ‘부산 어워드’ 후보작 ‘여행과 나날’ 제작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배우 심은경, 미야케 쇼 감독, 배우 타카다 만사쿠. 정성운 인턴기자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신설 경쟁부문 ‘부산 어워드’ 후보작 기자회견이 20일 오전에도 열기를 이어갔다. 일본과 한국의 신작 두 편이 연이어 공개되며 영화의전당 비프힐은 다시 한 번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먼저 일본 미야케 쇼 감독의 ‘여행과 나날’이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곧이어 한국 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 제작진이 기자회견장에 입장해 작품의 의미와 제작 뒷이야기를 나눴다.
■“배우의 고유 매력 살렸다”
이날 첫 번째 기자회견은 일본 영화 ‘여행과 나날’ 팀이었다. 미야케 쇼 감독은 배우 심은경, 타카다 만사쿠와 함께 무대에 올라 작품의 제작 과정과 의미를 공유했다. 영화는 만화가 쓰게 요시하루의 ‘해변의 서경’과 ‘혼야라동의 벤상’을 토대로 제작됐다. 여름 바닷가와 겨울 설원을 배경으로 두 인물이 우연히 만나 동행하며 얻게 되는 깨달음을 그린다.
심은경은 “미야케 감독님은 디테일한 지시를 하기보다 배우가 가진 고유한 매력을 지켜보고, 그것이 캐릭터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도록 이끈다”며 “연기하면서도, 내 것이면서도 새로운 해석을 발견하는 기분이었다”고 전했다. 또 일본어 연기에 대해 “꾸준한 억양·인토네이션 연습이 필요했다”며 “리허설 과정에서 우연히 넣은 일본어 애드리브를 감독님이 좋아해 영화에 반영된 장면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는 것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양국 배우들이 활발히 교류하며 새로운 매력을 만들어가는 시대가 열린 만큼, 이 작품이 그런 흐름 속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애플TV+ 시리즈 ‘파친코’에도 출연한 배우 타카다 만사쿠는 극 중 감정 표현이 거의 없는 캐릭터 나츠오를 맡았다. 그는 “미야케 감독님이 현장을 즐기는 분위기를 만들어줘 부담 없이 연기할 수 있었다”며 “여름 장면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려 했고, 배경과 동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했다”면서 본인의 연기에 대해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일본의 여름은 해방감과 즐거움이 가득한 계절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슬픔과 고독이 배어 있는 묘한 분위기를 어떻게 표현할지가 고민이었다”며 “상대 배우의 파워풀한 연기에 자극을 받아 나의 연기에 몰두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미야케 감독은 촬영 현장을 “여름엔 휴가처럼 바다에서 수영을 했고, 겨울엔 설원 속을 끝없이 걸었다. 영화 덕분에 이런 모험을 할 수 있었다”며 “소박한 이야기지만 음악만큼은 자연의 풍요로움과 장엄함을 고급스럽게 담아내려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원작자가 만화를 통해 본질을 탐구했듯, 나 또한 영화의 본질적 즐거움을 추구하려 한다”며 “구체적인 차기작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심은경 배우와도 또 다른 협업을 꿈꾸고 있다”고 전했다.
20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BIFF 경쟁부문 ‘부산 어워드’ 후보작 ‘지우러 가는 길’ 제작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유재인 감독, 배우 심수빈, 이지원, 장선. 정성운 인턴기자
■“상처 지우고 미래로 가는 선택”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는 한국 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 제작진이 입장했다. 영화는 고등학생 윤지가 교사와의 비밀 연애 끝에 임신을 하게 되고, 임신중지를 시도하며 겪게 되는 갈등과 상처, 그리고 주변 인물들의 선택을 다룬다.
유재인 감독은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중학생이 주인공이었으나 지나치게 가혹하다는 의견을 받아 지금의 이야기로 수정했다”며 “청소년의 임신과 출산, 임신중지 문제를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책임질 수 있을지 묻고 싶었다. 단순히 어둡게만 그린 게 아니라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주인공 윤지를 연기한 배우 심수빈은 “윤지의 행동을 이해하기보다 공감하려 했다”며 “글을 읽을 때마다 윤지의 마음을 따라가며 감독님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믿고 연기했다”고 말했다
윤지의 룸메이트 경선 역할을 한 배우 이지원은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는 윤지를 잘 보살피는 착한 친구인줄만 알았다”면서도 “촬영을 하다 보니 경선은 겉으로는 털털하고 명랑하지만 내면에는 윤지를 불편해하는 양가적인 심리가 있다”며 캐릭터의 입체성을 설명했다.
윤지를 임신시킨 교사의 아내 역할을 한 배우 장선은 “남편의 부도덕함을 외면하려는 아내 역을 맡았는데, 사랑했던 기억은 남기면서도 남편을 ‘지우러 가는 길’에 동행하는 아이러니가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매우 논란적이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중간중간에 코미디적인 요소도 가미된 게 특징이다. 유 감독은 “상영 중 관객들이 웃어줘서 큰 안도감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제 성격이 원래 그렇다. 진지한 상황에서 집중을 잘 못 하고, 오히려 다른 데에 마음을 빼앗겨 혼자 웃기도 한다”며 “이번 영화에서도 어두운 일들을 울며 넘기지 말고, 그 와중에도 ‘이 장면은 웃겼다’고 회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서도 이상한 손님을 보고 피식 웃었던 경험처럼, 그런 순간들에 늘 관심이 많다”고 덧붙였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