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대전고속도로의 장수IC에서 빠져나와 새만금포항고속도로를 달린다. 평범한 여러 산 너머로 갑자기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 두 개가 나타난다. 주변의 산은 사이좋게 비슷한 높이로 솟아있는데, 유독 두 봉우리만 위로 튀어나왔다. 저렇게 희한하게 생긴 산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특이한 전설을 떠올릴지 모른다. 악마가 대형 바위 두 개를 들고 가다 떨어뜨렸다거나, 고대 거인이 인간과의 싸움에서 패한 뒤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일지도 모른다.
이 산은 전북 진안군의 명물 마이산이다. ‘말의 귀’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이름에서 유추해보면 알 수 있듯 위의 두 전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리저리 알아보니 옛날 인간 사이에 섞여 살던 부부 신이 새벽에 하늘로 올라가려다 동네 주민에게 들키고 말았다. 부부는 등천하지 못하고 두 개의 봉우리로 변하고 말았다.
이번 여행은 마이산의 신기한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코스모스, 노랑(황하)코스모스, 해바라기가 피어난 진안농업기술센터에서 인생 샷을 찍는 게 목적이다. 이미 이곳은 가을 사진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누가 가더라도 실패하거나 후회할 일은 없다.
■세 가지 꽃 세 가지 풍경
진안IC에서 내려 진안농업기술센터로 달린다. 가을이면 많은 블로거, 유튜버는 물론 프로, 아마 사진작가들이 인생 샷을 건지기 위해 출사하는 곳이다. 도대체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그들이 몰리는 것일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들판으로 향한다. 들판 너머로 마이산이 보인다. 직선거리로는 2km인 데다 앞을 가리는 건 하나도 없어 마이산은 바로 눈앞인 듯 시원하게 보인다. 다른 곳에서 보는 것과 다른 점은 딱 하나다. 봉우리 두 개가 겹쳐 하나만 보인다는 사실이다.
이색적인 산 모습에 반한 채 시원한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들판 위로 올라서는 순간 “야!”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들판은 온통 코스모스 천지다. 앞쪽은 약간 끝물인 것 같지만 다른쪽은 여전히 꽃이 한참 피었다. 코스모스 꽃밭 한가운데로 걸어가서 마이산을 바라본다. 왜 이곳에 가을 사진을 찍으러 오는지 이유가 금세 드러난다.
마침 대형 버스 두 대가 도착한다. 한 대에서는 부부, 연인, 친구, 동네사람 등 개별 관광객이 우루루 내리고, 다른 한 대에서는 값비싼 카메라를 손에 든 아마 사진작가들이 하차한다. 그들이 서둘러 달려오는 곳도 바로 코스모스 꽃밭이다.
블로거로 보이는 한 젊은 여성이 삼발이에 휴대폰을 설치하더니 꽃밭으로 들어가 맑은 공기를 온몸으로 마시려는 듯 두 팔을 쭉 벌린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중년 여성 두 명도 ‘포토존’이라는 팻말이 세워진 꽃밭 안으로 들어가 밝은 표정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준다.
가만히 서서 코스모스 꽃밭과 그 너머 마이산을 바라본다. 가을을 대표하는 알록달록한 코스모스가 다양한 색으로 알록달록하게 핀 게 마치 동네 주민에 들켜 바위로 변해버린 부부 신이 올라가려던 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하늘나라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지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코스모스 꽃밭 하나만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기에는 시간이 아까울지도 모른다. 다행히 이곳에는 코스모스 외에 다른 꽃밭도 마련돼 사진을 더 찍을 기회를 제공한다. 코스모스 꽃밭 바로 앞에는 노랑코스모스 꽃밭과 해바라기 꽃밭이 각각 마련됐다.
노랑코스모스는 사실 노랗다기보다는 주황색에 가깝다.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코스모스가 아니라 다른 꽃이라는 오해를 주기 쉽다. 좋은 사진을 찍는 데 꽃 이름을 오해하든 말든 상관은 없다. 이곳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의 느낌은 코스모스 꽃밭에서 찍은 사진과 완전히 다르다. 코스모스 꽃밭이 조금 친근하고 소박한 소녀 같다면 이곳은 다소 도도하고 근엄한 귀부인이라고나 할까. 물론 사람마다 날씨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으니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다른 건 당연지사다.
해바라기는 화사하게 피긴 했지만 아직 다 익지 않은 듯 약간 푸르고 싱싱하다는 느낌을 준다. 누렇게 익은 해바라기를 본 경험은 더러 있지만 이렇게 아직 어린 분위기를 주는 꽃은 처음이다. 마침 해가 마이산 반대편 쪽에 떠 있어 해바라기도 마이산을 바라보지 않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린 상태다. 마치 말다툼한 두 연인이 토라져 등을 돌린 형상이다. 그래도 사진 찍기에는 이런 모습이 나아 보인다. 해바라기가 마이산을 바라본다면 마이산 사진을 찍을 때 해바라기는 얼굴이 아니라 뒤통수만 보이기 때문이다.
마이산을 배경으로 세 가지 꽃의 세 가지 풍경을 찍다 보니 엉뚱한 생각이 든다. 센터 쪽에서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마이산 두 봉우리가 겹쳐 하나로 보인다. 사진을 찍을 때 봉우리 하나보다는 두 개가 더 멋져 보일 텐데 아쉽다. 그래서 산 바닥에 바퀴를 달아 가을에는 두 봉우리를 센터 쪽으로 돌려 사진이 더 훌륭하게 나오도록 만들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허상이다.
세 가지 꽃의 세 가지 풍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았다면 이제 저수지를 보러 갈 때다. 센터에는 ‘반달’이라는 뜻의 반월제라는 저수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찍는 사진이 또 멋지기로 유명하다. 센터에서 볼 때 마이산은 서쪽이어서 해가 질 때 사진을 찍으면 놀라울 정도로 훌륭한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지금은 한낮이어서 일몰 사진은 촬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연잎이 둥둥 떠다니는 저수지와 마이산을 한 컷에 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마이정원과 탑사
진안농업기술센터에서 마이산을 배경으로 세 가지 꽃과 저수지를 구경했다면 이제는 직접 마이산으로 갈 차례다.
마이산에 올라가기 전에 두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는 사진을 찍으려면 마이산북부예술관광단지 제1주차장 쪽의 마이정원으로 가야 한다. 이곳에서 사진을 촬영하고 편안하고 느긋한 가을 산책을 즐기려면 마이산도립공원 제1주차장으로 달려가면 된다.
마이산도립공원 제1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나타난다. 잎이 무성해서 한여름에도 충분한 그늘을 드리워준다. 아직 가을이 깊지 않아 잎이 완벽히 단풍으로 바뀌지는 않았지만 가을 향기가 서서히 퍼진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숲길 한가운데에 저수지 탑영제가 나타난다. 그 뒤로 마이산 봉우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진안농업기술센터나 마이정원 쪽에서 바라보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냥 큰 바위 덩어리처럼 보인다.
저수지 인근에는 돌탑이 보인다. 이곳에는 탑사로 올라가는 관람객이 돌을 쌓아 탑을 만들 수 있는 ‘돌탑체험장’이 있다. 관람객들이 쌓아올린 크고 작은 돌탑은 한두 개가 아니다. 탑 하나하나마다 모두의 정성과 기원이 담겼다.
숲길을 따라 개울도 흐른다. 나무덱이 만들어져 개울을 따라 걷기도 편하다.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시멘트를 발라놓은 산책로보다 훨씬 아름다운 길이다.
숲길의 끝은 오늘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탑사다. 마이산 두 봉우리 아래에 수많은 돌탑이 있다고 해서 탑사라고 불린다. 돌탑을 쌓은 사람은 19세기 이갑룡 처사였다. 원래 돌탑은 120개 정도였지만 지금은 80개만 남았다.
마이봉 아래에 파묻혀 따스한 가을햇살을 받는 탑사의 풍경은 특이하다. 사찰이 풍경의 핵심인지 돌탑이 이곳의 주인인지 단언하기 힘들 정도로 돌탑이 돋보인다.
남태우 기자 le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