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 지사동 집에서 베트남에서 온 우엔티 투이(39) 씨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베트남에서 온 우엔티 투이(39) 씨에게 부산은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한 새로운 시작의 땅이었다. 그러나 꿈꿨던 ‘부산 드림’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언어 장벽과 보육비 부담, 제한된 노동의 자유는 그와 같은 이주민 가족에게 여전히 높은 장벽이다. ‘글로벌 도시 부산’에서 외국인 가정이 체감하는 삶은 아직 낯설고 버겁다.
■‘코리안 드림’ 꿈꾸며 찾은 부산
투이 씨는 2017년 10월 동반(F-3) 비자를 통해 처음 부산 땅을 밟았다. 만 3살이 된 첫째 아이의 손을 꼭 쥔 채였다.
투이 씨가 부산행을 결심한 배경에는 가족과 함께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투이 씨와 같은 베트남 사람인 남편은 2007년 고용허가제(E-9) 비자로 부산에 왔다. 4년 이상 체류 등 조건을 채워 숙련기능인력(E-7-4) 비자로 전환했다. 강서구 미음공단에서 용접 일을 하는 그는 형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베트남을 찾았다가 투이 씨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얼마 뒤 선물같은 첫째가 태어났다.
베트남에서 투이 씨와 함께 사는 아이가 2년 동안 남편의 얼굴을 본 건 고작 1번이었다. 그래서 투이 씨는 부산에 가기로 했다. 남편의 직장이 있는 강서구에 터전을 잡았다.
투이 씨는 베트남에서 영어 선생님으로 일했다. 부산에 오며 좋은 직장을 그만둬야 해 아쉬웠다. 그래도 교육 환경이 좋은 부산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에 고심 끝에 부산행 비행기를 탔다.
■만만찮은 현실의 벽
투이 씨의 ‘부산 드림’은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첫째는 한국말을 아예 모르고 한국 이름도 없는 채로 부산에 왔다. 어린이집에 보내면 언어를 배워 올 것이란 생각했으나 기대와는 달리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취학 외국인 아동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육 기관을 찾기도 어렵다. 외국인 아동 대상 한국어 교육은 사상구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어 지리적으로 참여가 힘들다. 서울시는 3~12세 외국인 아동을 대상으로 ‘맞춤형 한국어 방문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부산 사람인 투이 씨 아이는 서비스를 받을 길이 없다.
투이 씨는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직접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세요. 천천히 가르쳐 주세요”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날부터 투이 씨는 한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TV를 보며 한국어를 독학하다가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에 나가 공부하기도 했다.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낯선 땅에서 겪는 어려움은 비단 투이 씨만이 겪는 문제는 아니었다. 이주노동자 부모의 상당수는 한국어가 미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와 셋째가 태어났다. 바쁜 부산살이 속에서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어느덧 첫째는 초등학교, 둘째는 유치원, 셋째는 어린이집에 다닌다. 익숙해지지 않는 건 교육비다. 특히 어린이집에 다니는 셋째는 달마다 46만 원의 어린이집 비용을 내야 한다.
■부산에 계속 살고 싶지만
투이 씨 부부는 외국인이기에 정부의 보육료 지원을 받지 못한다. 일부 지자체는 ‘무상 보육’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자체적으로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투이 씨가 살아가는 부산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나마 올해부턴 부산외국인주민지원센터로부터 셋째 보육료로 매달 30만 원을 지원받아 숨통이 트였다. 센터는 25명의 이주아동을 선정해 월 30만 원씩 1년간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하고 있다. 다만 25명이라는 지원 대상은 부산 전체 0~5세 외국인 아동(3938명)의 0.63%에 불과하다.
더 좋은 직장을 찾아 이직하는 일도 투이 씨 부부에겐 언감생심이다. 미음공단에서 용접 일을 하는 투이 씨 남편은 18년째 한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시급은 그리 높지 않다. 약 1만 1000원으로 최저임금보다 1000원가량 많은 수준이다.
아이들이 커가고 식구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돈을 버는 직장이 필요하지만 이직은 법적으로 막혀 있다. 고용허가제(E-9)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제한돼 있다. 지난 9월 기준 비자가 있는 부산 전체 체류 외국인 6만 6364명 중 9366명(14.1%)이 고용허가제(E-9)로 부산에 입국했다. 이들 모두 투이 씨 부부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답습할 수밖에 없다.
투이 씨 부부가 부산시의 지원을 받기 위해 부산시 인구정책담당관실 내 외국인정책팀에 도움을 청한다면 어떨까. 팀장을 포함해 3명으로 구성된 외국인정책팀은 투이 씨의 상황에 해당하는 기관에 방문해 상담을 받으라고 안내한다.
결국 투이 씨는 생활비 마련을 위해 지난 5월부터 녹산공단에 있는 지하철 설비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투이 씨 부부는 아이 셋을 둔 맞벌이 부부가 됐다. 일요일 오후 1시, 세 아이를 친구 집에 맡기고 출근할 준비를 하는 투이 씨는 사뭇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 부산에서 계속 살고 싶어요. 저도 남편도 아이들도 모두 한국 문화를 사랑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베트남에 돌아가는 친구들도 많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제가 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할 수밖에요.”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