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한 도시철도에서 시민이 교통카드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 없음. 부산일보 DB
경찰이 지하철을 이용해 도주하는 피의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카드 정보를 제공 받지 못해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 부산교통공사(이하 교통공사)는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정보 제공이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수사기관은 버스, 가게 등에서의 결제 내역은 제공이 되는 만큼 원활한 범인 검거를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17일 부산 남부경찰서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달부터 보이스피싱 현금 수거책 남성 A 씨를 추적 중이다. A 씨는 피해자 1명으로부터 현금 등 1억 원 상당을 받아 또 다른 수거책에게 전달·송금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A 씨가 지난달 부산도시철도 동래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도주한 사실을 확인하고, A 씨가 통과한 개찰구에 저장된 카드번호 정보를 교통공사에 요청했다. 그러나 교통공사는 “영장이 없으면 제공할 수 없다”며 협조를 거부했다. 이에 경찰은 영장 발부 절차를 밟느라 일주일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경찰 관계자는 “영장을 추가로 기다리게 되면서 지난 11일에서야 카드사에 개인 정보 제공을 요청하게 됐다”며 “A 씨 신상은 17일 현재까지도 특정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경찰은 통상 대중교통을 이용해 도주하는 피의자를 추적할 때 교통공사나 마을·시내버스 교통카드 단말기를 관리하는 업체 ‘마이비카드’ 등을 통해 카드번호를 확보한다. 이후 영장을 발부받아 카드사에 해당 카드 소유주 정보를 요청해 피의자 신상을 특정한다.
교통공사는 지난 8월부터 경찰이 영장을 지참하지 않은 경우 카드번호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기존에는 수사 협조 공문만으로도 정보 제공이 가능했지만, 개인정보 보호 강화를 이유로 내부 방침을 변경했다. 이 조치는 2021년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이하 위원회)의 심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교통공사는 올해가 돼서야 위원회 의결 결과를 인지하고 약 4년 만인 지난 8월부터 정책을 바꿨다.
당시 위원회는 카드번호가 CCTV 등 교통공사가 보유한 다른 정보와 결합될 경우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며 개인정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예외적으로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정황이 있고,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 가능한 경우에만 영장 없이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의결했다.
그러나 교통공사는 공문을 통해 카드번호를 제공하는 것이 예외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경찰 공문만으로는 위원회에서 권고하는 사실관계를 교통공사가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교통공사 관계자는 “협조 공문에 따라 정보를 제공했다 하더라도 피의자가 아닌 제3자의 개인정보 제공 판단과 책임은 교통공사에 있다”며 “개인정보 관리 기관으로서 경찰 수사 협조보다 개인정보 보호가 더 중요한 가치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통공사의 이같은 지침을 두고 카드 정보를 제공하는 다른 기관·대중교통과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경찰에 따르면 마이비카드는 공문만으로 마을·시내버스를 이용한 승객 카드번호를 경찰에 제공한다. 교통공사만 정책을 바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카드번호를 입수하기 위한 영장을 발부받으려면 일반적으로 7~14일이 소요된다. 그 사이 피의자가 부산을 벗어나거나 해외로 도주하면 피의자를 검거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피해 구제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 추가 피해가 발생해 전체 피해 규모가 커질 우려도 있다.
교통공사가 개인 정보 보호를 내세우지만 지난 4년간 카드번호 제공으로 소송 등이 제기된 전례는 없다. 경찰 관계자는 “카드번호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어떠한 법이나 절차에도 위반되지 않는다”며 “신속한 피의자 검거와 피해 확산 차단을 위해서는 부산교통공사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수빈 기자 bysu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