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한 대학병원 모습. 의료진이 환자 진료 상황을 살피고 있다. 부산일보DB
지난 9월 전공의들이 복귀하며 의정 갈등이 봉합됐지만 부산 주요 병원 응급실은 여전히 의료진 부족으로 소아과와 외과 등 일부 과목이 마비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과의 경우 모든 분야의 소아 응급환자 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전무해 지역 응급의료 체계 붕괴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지난 19~21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실 종합상황판(내 손안의 응급실)을 분석한 결과 부산 주요 병원 5곳(인제대 해운대백병원, 동아대병원, 인제대 부산백병원, 부산대병원, 고신대복음병원) 모두에서 응급의료 제한 과목이 확인됐다.
인제대 부산백병원은 소아과 의료진 부족으로 환자 수용이 불가했고 고신대복음병원에서도 신규·재·초진 소아과 환자 진료가 불가했다. 연령이 낮을수록 응급진료는 더 힘들었는데 동아대병원에선 100일 미만 소아과 신규 환자 등의 진료가 불가했다.
외과 주요 과목에도 응급의료 공백이 발생했다. 인제대 해운대백병원에선 흉부외과 심장혈관파트, 대동맥 박리 관련 수용이 불가했고 부산대병원에선 상의되지 않은 외과 신규 환자 진료가 불가했다. 병원들은 특정 환자의 응급실 진료·입원·수용이 불가함을 알리거나 의료진 부재·부족을 안내하고 있었다.
필수 의료 현장의 공백은 환자의 생명으로 직결된다. 지난달 부산에서 경련 증세를 보인 고등학생은 응급실을 찾지 못한 채 구급차 안에서 숨졌다. 당시 구급대에서 14차례 병원에 수용 가능 여부를 물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현생법상 119구급대원은 응급실에 전화해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한 뒤 환자를 이송할 수 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구급대원은 환자 수용이 가능한 병원을 빨리 찾아야 하는데 많은 병원에서 진료 불가를 안내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진료가 가능하다고 돼 있는 경우에도 막상 병원에 전화를 걸어 확인 해 보면 진료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바뀐 경우도 많다”고 밝혔다.
병원들은 응급실 수용 불가 이유로 ‘의료진 부족’을 내세운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더라도 응급 처치 후 수술 집도나 후속 진료를 이어갈 의료진이 없다는 이유다. 의료진이 있더라도 절대적인 수가 부족해 당직 운영이 어려워 24시간 응급실 진료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모든 파트가 24시간 진료가 가능하려면 한 세부 전공당 최소 2명의 의사 선생님이 있어 당직을 돌아가면서 설 수 있어야 한다”며 “우리 병원은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5명인데 최소 10명 이상은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의료진 부족 문제는 전공의 복귀 이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 9월 전공의가 병원에 돌아오면서 전국 수련병원의 전공의 숫자가 의정 갈등 전의 76%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나 부산에선 대표 병원인 부산대병원마저 전공의 복귀율이 약 64%에 그쳤다. 소아청소년과엔 전공의가 아예 돌아오지 않은 부산의 병원도 있었다. 기존 전문의들마저 업무 과중에 지쳐 대학병원을 떠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응급실 운영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료계에서는 ‘방어 진료’ 분위기가 응급의료 붕괴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2023년 장이 꼬여 구토하던 생후 5일 된 신생아가 수술 후 후유증을 앓자 법원은 응급 수술한 외과 의사 등에게 10억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후 해당 분야를 전공한 의사가 아니면 사법 리스크로 다른 과 환자를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지역의 필수의료 인력 수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필수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늘어나면 지역 의료 인력 수급도 수월해질 것이라는 의견이다. 부산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의사는 “지역 대학병원의 급여는 박하고 환자는 중증이라 리스크가 높고 치료를 열심히 해도 보상은 없는 구조”라며 “지역의사제를 통해 지역 복무를 의무화하더라도 근본적인 지역 의료 환경을 개선하지 못하면 의무 기간만 채우고 지역을 떠나 지역엔 의사가 없거나 미숙한 의사만 남는 문제가 여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