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명의 사상자를 낸 울산 동서발전 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5호기 붕괴 현장 모습. 부산일보DB
울산 동서발전 화력발전소 붕괴 사고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던 ‘공작물 해체 신고’ 조례가 울산시 5개 구·군 중 유일하게 사고가 발생한 남구에만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구·동구·북구·울주군 등 나머지 4개 구·군은 이미 조례를 통해 공작물을 관리 대상에 포함해 왔던 것과 대조적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울산화력발전소 5호기 보일러 타워는 높이 63m, 가로 25m, 세로 15.5m에 달하는 철골 구조물이다. 현행법상 지붕과 기둥, 벽이 있는 일반적인 ‘건축물’과 달리 보일러 설비를 지지하기 위한 이러한 철골 구조물이나 굴뚝 등은 ‘공작물’로 분류된다.
문제는 현행 건축물 관리법이 해체 허가와 감리 지정 대상을 ‘건축물’로 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고난도 폭파 공법이 동원됐지만 이번 사고 현장은 해체 허가와 감리 의무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남구청은 상위법인 건축물 관리법을 내세워 법 체계상 맞지 않다고 해명했다. 남구청 관계자는 “건축물 관리법은 해체 신고 대상을 건축물로 한정했고, 공작물까지 대상에 넣는 건 이에 맞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남구청의 해명과 달리 지자체마다 자체 조례를 제정해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 울산시 5개 구·군의 ‘건축물 관리 조례’를 보면 남구를 제외한 4곳은 모두 공작물 해체 시 신고를 의무화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울산 북구(제7조)·동구(제7조)는 물론, 지난해 12월 관련 조항을 정비한 울주군(제7조)도 ‘건축법 제83조에 따른 공작물’을 해체 신고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대규모 산업단지가 위치한 전남 여수시와 경남 거제시, 충남 서천군 역시도 모두 조례를 통해 공작물 해체를 관리 중이다.
정작 석유화학단지를 끼고 있어 노후 설비 해체 수요가 많은 남구만 해당 규정을 두지 않았다. 안전 관리의 공백을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부울경의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단지는 지은 지 60년이 넘어서 낡은 설비를 뜯어낼 일만 남았는데 여태 조례 하나 없었다는 건 남구청이 너무 안일했던 것”이라며 “공작물 해체는 위험한 작업이 수시로 벌어지고 있어 사각지대를 지자체가 조례로라도 챙겼어야 했다”라고 꼬집었다.
남구도 다른 구·군과 마찬가지로 조례에 신고 의무를 명시했다면 발주처와 시공사는 착공 전 지자체에 해체 신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는 해당 공사가 ‘폭파 공법’을 사용하는 특수 공정임을 인지하고, 국토안전관리원에 안전성 검토를 의뢰하는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공사 현장에는 안전을 감독할 ‘상주 감리’ 배치가 의무화되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남구에는 관련 조례가 없었고, 사고 가능성이 높은 타워의 철거 작업이 통제 없이 방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남구청은 뒤늦게 취재진에게 ‘법률 자문을 거쳐 타 지자체 사례 등을 참고해 조례 개정을 검토하겠다’라고 나섰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수습에 급급한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