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트럼프

입력 : 2026-03-10 18: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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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주간

TACO와 FAFO 트럼프 두 얼굴
미국 국익 앞세운 전략적 행동
중동전쟁 운명도 그의 손에 달려

미중 회담 앞둔 김정은도 고심
우리 정부 실용외교 입지 좁아져
‘페이스메이커’ 아닌 구경꾼 우려

트럼프에게는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라는 비아냥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앞에서는 큰소리치지만, 항상 겁을 먹고 물러선다는 것이다. 특정 국가를 향해 대규모 관세 부과를 위협해 놓고, 시장 반응이 부정적이면 철회하거나 유보한다. 국제 안보에서도 극단적 무력 위협을 즐기지만, 실행에 옮기는 경우는 희박하다. 이런 그의 행동은 ‘연필을 휘두르며 고함치는 것을 좋아한다’라고 비유되곤 했다.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유명한 격언 ‘큰 몽둥이를 들고 조용히 말하라’에 빗댄 표현이다.

트럼프 1기 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커지자 “세계가 본 적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지만, 실제는 북한과 협상을 했고 결렬 후에도 화염과 분노는 잊은 듯했다거나 “아프가니스탄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라고 경고하고는 아무런 양보도 받지 못한 채 미군을 철수했던 과거사까지 TACO의 증거로 소환됐다. 그 자신도 ‘전쟁광’보다는 ‘피스 메이커’ 이미지를 앞세웠다.

그런 트럼프가 변했다. 올해 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전격 체포한 후 압송하는 군사작전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확고한 결의’로 이름 붙인 작전 직후 백악관은 공식 SNS에 사진 한 장을 올렸다. 트럼프가 굳은 표정으로 계단을 오르는 흑백 사진인데 아래에 ‘FAFO’라는 글자를 대문짝만하게 새겼다. ‘까불면 죽는다’(F*** Around, Find Out)라는 메시지다. 공교롭게도 사진 속 배경은 지난해 APEC 때 시진핑과 정상회담을 가졌던 김해국제공항이다. 트럼프는 불과 2개월 만에 ‘장대한 분노’ 작전으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참수하며 다시 한번 FAFO 메시지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확고한 결의’ 때와는 달리 ‘장대한 분노’가 ‘장구한 늪’으로 빠져들 우려가 있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압도적 군사력과 정보력, AI까지 동원해 적의 수뇌부를 제거하는 모습은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 게 사실이다.

TACO와 FAFO는 마치 두 얼굴의 트럼프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기 마음대로 하는 트럼프’라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그 준거는 미국 우선주의다. 국제 질서나 규범도 이에 반하면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다. 그에게는 두 모습 다 국익을 위해 철저히 계산된 전략의 양면일 뿐이다. ‘트럼프 광신도’로 불리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는 힘에 의해 지배되고 무력에 의해 지배되며 권력에 의해 지배된다. 이것이 세상의 철칙이다”라고 했다. 이 표현이야말로 트럼프의 본질을 대변한다.

중동전쟁 장기화에 대한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지만, 이 또한 트럼프 맘이다. 전쟁 시작도 끝도 그의 손에 달렸다. 미국의 전략적 목적을 달성했다며 전쟁 승리를 선언하고 폭격을 멈추면 그것으로 끝이다. 트럼프가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당황스러워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이제 세계의 시선은 자연스레 북한 김정은에게 향한다. 트럼프는 하메네이 제거 후 “미친 사람들이 핵무기를 가지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라고 했다. 북한에 대한 경고 메시지냐는 질문에 굳이 부인하지 않는다. 김정은은 황해북도 시멘트 공장을 현지 시찰하며 담배 피우는 모습을 연출했는데, 그 태연함이 오히려 심리적 두려움의 역설로 보인다. 미국의 이란 침공을 불법 무도한 침략 행위라고 비난하면서도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격을 최대한 낮춘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이달 말과 다음 달 초로 예정된 베이징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APEC 때 트럼프 러브레터에 퇴짜를 놓은 마당이라 더 그렇다. 당시는 트럼프가 전략적 인내를 보이며 돌아섰는데 김정은이 트럼프의 러브콜을 다시 거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1기 백악관 국가안전보좌관이 회고록에서 “트럼프가 ‘북한군 열병식 때 전체를 제거하면 어떻겠느냐’라고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라고 기록했는데 김정은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문제는 우리 정부다. 통일부의 대북 유화 노력에도 북의 반응은 싸늘하다. 최근 열린 제9차 당대회 보고에서도 한국과의 적대적 국가 간 관계를 불변의 원칙으로 천명했다. 남측과의 교류가 ‘잘사는 한국’에 대한 선망만 퍼뜨려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남북 관계 복원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와중에 우리 군과 주한미군 사이에 군사훈련 등을 놓고 벌어진 불협화음은 위태하기까지 하다. 가뜩이나 트럼프가 우리에게 전략적 유연성을 강요하고 있는 마당에 동맹에 대한 신뢰 문제로 비화하면 안보 위협으로 번질 수도 있다. 그러잖아도 미국과 중국, 북한이 벌이는 큰 판에서 ‘페이스메이커’는커녕 구경꾼으로 전락할 공산이 큰 상황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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