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선사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국내 최대 컨테이너 선사의 주소지가 바뀌는 것은 단순한 기업 이전을 넘어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퍼즐 조각을 맞추는 상징적 사건이다. 항만과 물류, 금융과 인재가 한 도시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분권은 구호가 아닌 구조가 된다. 다만 경제와 산업의 물길이 바뀌는 역사적 길목에서, 정작 도시의 영혼을 채워야 할 문화예술 분권이 얼마나 낯설고 허술한지 뼈아프게 목격하고 있다.
산업의 분권만큼 문화적 자생력도 중요하다. 해프닝처럼 지나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지방 이전 논의 또한 분권의 본질을 비껴가기는 마찬가지다. 애초에 한예종은 학위 수여가 목적이 아닌 실기 중심의 전문 예술인 양성을 위해 설립된 독자적 교육기관이었다. 수능과 학점이라는 기존 틀을 깨고 현장형 인재를 키우던 학교가, 이제 와서 박사학위 과정 신설과 건물 이전에 목매는 것은 스스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박사 가운이 아니라 마음껏 기량을 펼칠 무대와 정당한 노동의 대가다. 학교를 옮길 궁리보다 졸업생들의 일자리를 먼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한다.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을 둘러싼 예산 논란은 우리 안의 뿌리 깊은 ‘문화 사대주의’를 여실히 드러낸다. 운영 주체는 라 스칼라 초청에 총사업비 105억 원을 투입하는 명분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경험하고 극장 운영 노하우를 전수받는 과정”이라고 미디어를 통해 강조했다. 하지만 1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단 며칠의 박수와 함께 해외로 송금하는 구조는 문화 투자가 아니라 명백한 ‘문화 식민주의’의 산물이다. 이미 세계 주요 극장의 무대와 백스테이지에서 한국인 공연예술 종사자들이 충분히 실력을 증명해 왔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한국 예술현장이 지닌 힘이다. 이처럼 엄연한 증거를 두고도, 우리 인력을 ‘모자란 존재’로 규정하며 서구의 권위를 빌려와야만 개관의 위신이 선다는 발상이 부끄럽지 않은가. 우리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성장시킬 예산과 구조가 빈약한 것이 본질이다.
고 황한식 교수를 필두로 한 지방분권화 운동은 지역이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겠다는 ‘존엄의 투쟁’이었다. 긴 세월 동안 우리는 분권을 외쳤지만, 문화예술을 지역 경제의 혈맥인 ‘지역순환경제’ 관점에서 사유하는 데는 실패했다. 부산문화회관의 1년 치 운영비를 넘는 금액, 연간 지역 오페라 지원 예산의 약 50배에 달하는 혈세를 단 며칠의 갈채와 맞바꾸는 행위는 지역경제 순환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오페라하우스는 랜드마크를 넘어 관련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구조여야 한다. 지역의 문화산업은 지역 내에서 기획되고 인력이 투입되며, 그 경험과 수익이 다시 지역에서 다음 창작으로 이어져야 한다.
극장은 본래 모든 예술이 만나는 ‘종합예술의 산실’이다. 불세출의 기획자 디아길레프는 20세기 초 파리를 뒤흔든 ‘발레 뤼스’를 통해 스트라빈스키와 드뷔시의 음악, 피카소와 마티스의 미술, 니진스키의 춤, 샤넬의 의상 등을 결합해 세계 문화사를 새로 썼다. 완성된 공연을 사 오는 ‘하청’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들이 치열하게 협업하며 스스로 새로운 ‘명성’을 창조해 냈다. 수십 년 전문성을 닦은 지역 예술가들이 갈 곳이 없어 고향을 등지는 현실에서 부산오페라하우스는 일방적인 패키지형 수입처가 되기를 자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지역 인재들이 ‘직업인’으로서 정착해 부산만의 작품을 직조해 내고, 이를 시민들이 고르게 누리는 진정한 향유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부산은 클래식 전용극장이 차례로 들어서며 도시의 예술 지형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건물만으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그 공간을 채울 사람들의 시간과 노동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지역 예술인을 무대 밖 들러리로 세우지 말고 세계적 수준과 대등하게 부딪히며 실질적인 내공을 쌓는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사대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 그 이름이 지나간 자리에 부산의 역량이 남고 다양한 계층의 예술가들이 이 도시를 일터로 삼을 수 있는 촘촘한 구조를 짜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있다. 다들 더 큰 건물과 유명한 행사 유치만 외친다. 공연예술을 도시의 순환경제로 이해하는 관점의 공약은 잘 보이지 않는다. 분권은 단순한 권리 이양만이 아니다. 분권을 통해 지방에 가치가 쌓여야 한다. 며칠간의 사치보다 다음 세대 예술가들이 이 도시에서 연습하고, 일하며, 창작하고, 관객을 만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삶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진정한 해양수도라면 문화를 ‘소비하는 도시’가 아니라 ‘창조하는 도시’라야 한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부산시 문화정책이 순간의 허영을 걷어내고 도시의 미래를 채울 축적의 길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이 되기를 서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