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현지 시간) 오만 무산담에서 바라본 호르무즈해협에 정박해 있는 선박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의 상선 공격에 미국이 보복 공습과 대이란 제재 복원으로 맞서면서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해협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이웃 국가’인 튀르키예를 방문한 시점에 군사·경제 압박을 동시에 끌어올렸고 이란도 미국이 종전 양해각서(MOU)를 먼저 위반했다며 맞대응했다. 미국과 이란이 휴전에 합의한 뒤 회복하던 에너지 수송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양국이 서로 고강도 대응에 나선다면 종전 협상 최종 합의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군 중부사령부는 7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엑스(X)를 통해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이 6~7일 상선 3척을 공격한 데 대한 대응 조치로서 이란에 대해 80개가 넘는 표적을 타격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이란 내 80개가 넘는 군사 표적을 공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공습 개시 약 2시간 전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 면제 조치도 철회했다. 미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이날 이란산 원유의 생산·인도·판매를 허용하기 위해 지난달 21일 발급했던 60일짜리 임시 일반면허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이웃 국가’인 튀르키예를 방문한 시점에 군사·경제 압박을 동시에 끌어올린 셈이다.
양국의 충돌로 해상 위협 수위도 높아졌다.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해상 위험을 평가하는 다국적 기구 공동해양정보센터(JMIC)는 이날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선박의 위험 수준을 기존 ‘상당함’에서 ‘심각함’으로 상향 조정했다. JMIC의 해상 위협 수위는 낮음, 보통, 상당함, 심각함, 위기 등 5단계로 구성된다. ‘심각함’은 의도적이고 적대적인 공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큰 상태를 뜻한다.
이번 경보 상향은 호르무즈해협 인근에서 선박 3척이 잇따라 공격받은 이후 나왔다. 해운업계는 이번 공격을 휴전 이후 호르무즈해협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충돌로 보고 있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공격받은 선박 중 하나는 카타르 국적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알레카야트호’로, 오만 연안 해역에서 피해를 입었다. 사우디아라비아도 자국 초대형 유조선 ‘웨디얀호’가 오만 연안에서 공격받았다며 이란을 배후로 지목했다.
이란은 미국의 공습 직후 미군 기지가 있는 바레인과 쿠웨이트를 타격하며 맞대응에 나섰다.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8일 국영 방송을 통해 바레인과 쿠웨이트 내 주요 미군 시설 85곳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이란군을 통합 지휘하는 하탐 알안비야 중앙군사본부도 성명을 내고 미군 공습을 “노골적인 침략”이라며 “압도적인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관리에 개입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SNS를 통해 호르무즈해협 통항 문제, 추가 공습 위협, 대이란 원유 제재 재개 등을 미국의 종전 합의 위반 사례로 열거하며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양측 충돌이 군사적으로 커진다면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원유와 LNG 수송은 큰 타격을 받을 전망이다. 군사적 긴장은 국제 에너지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 복원 소식 이후 상승해 한때 배럴당 약 76달러까지 올랐다. 전쟁 초기 공급 차질 우려가 극에 달했을 당시 배럴당 118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유가는 휴전 이후 안정세를 보였지만,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충돌이 재점화하면서 다시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란은 최근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장례식을 4개월여 만에 치르며 이를 ‘반미 결집’의 계기로 삼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군사·경제 압박을 동시에 강화하면서 이란의 대응 수위가 주목된다. 양측의 무력 충돌 수위가 올라간다면 후속 종전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