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비가 내리지 않는 장마

입력 : 2026-07-19 17:5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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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는 예부터 ‘길게 내리는 비’를 뜻했다. 옛말도 ‘오래’라는 뜻의 ‘오란’과 ‘비’를 더한 ‘오란비’였다. 나라에서는 장마가 너무 길어지면 날이 개기를 빌던 ‘기청제’를 지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조선 순조 21년(1821년)에 장마가 무려 4개월 지속됐다는 기록도 나온다. 장마가 6월 초부터 9월 말까지 이어졌다. 당시 여러 차례 기청제를 지냈는데 소용이 없었다.

근래 가장 긴 장마는 2020년 중부지방 장마였다. 그해 중부지방 장마는 6월 24일 시작해 8월 16일까지 54일간 지속됐는데, 1973년 이래 가장 긴 장마였다. 제주에서도 장마가 49일간 이어졌다. 그 전엔 2013년 49일(중부)이 최장이었다. 북극에서 이상 고온 현상이 일어나 찬 공기가 남하하며 한반도에 장마전선이 이례적으로 길게 머문 때문이었다.

장마라는 이름이 무색한 해도 있었다. 지난해 남부 지방은 장마 기간이 13일에 그쳐 1973년(중부·남부 각 6일) 이후 역대 가장 짧은 장마로 기록됐다. 2010년 이후 장마는 강수일은 줄었지만 강수량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많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비가 오면 폭우가 내렸다가 그 사이에 길게 불볕 더위가 이어지는 식이다. ‘도깨비 장마’ ‘마른 장마’ 같은 신조어도 등장했다. 예년 같으면 장마가 끝날 시기인 8~10월에 비가 잦은 경우도 많아 ‘2차 장마’ ‘가을 장마’ 용어도 쓰인다.

날씨 예측이 어려워 ‘괴담’ 수준의 정보들이 퍼지는 일도 잦아졌다. 각종 SNS에는 ‘8월에 40도 폭염이 찾아온다’ ‘역대급 더위가 예고됐다’ ‘한 달 내내 비가 내린다’ 같은 날씨 콘텐츠들이 공유되고 있다. 이런 정보 대부분이 허위인데, 요즘은 기상청도 장기 예보를 하지 않는다. 장마 기간 발표도 2009년부터 중단했다. 장마 시작과 종료 시점도 여름이 지나고 사후 분석해 발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장마의 모습이 많이 달라져 혼선이 빚어지면서 한국기상학회는 올해 ‘장마’ 관련 용어를 새롭게 정의했다. 장마는 ‘여름철에 여러 날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현상이나 날씨’, 장마철은 ‘다양한 기작에 의해 다량의 강수가 한반도에 발생하기 좋은 조건이 형성되는 기간’으로 정의했다. 장맛비는 ‘장마철에 내리는 비’를 뜻한다.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올 수도, 오지 않기도 하는 세상이 됐다. 100mm 넘는 장맛비를 걱정하다 하루이틀 후 폭염에 시달려야 하니 장마철이 이래저래 더 힘들어졌다. 조심, 또 조심이다. 김영한 논설위원 kim01@

김영한 논설위원 kim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