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 운반선에서 재기화한 가스로 바다 위에서 전력을 만들어 데이터센터를 가동하는 개념도.
최영찬 선보엔젤파트너스· 라이트하우스컴바인인베스트 대표
2000조 원. 대한민국 한 해 예산의 세 배쯤 되는 돈이다. 이 시장이 지금 바다 위에 떠 있다. 하나는 전기를 만드는 바다, 다른 하나는 탄소를 묻는 바다. 세계 최고의 해양 전문 조사 기관 클락슨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 두 시장이 2035년까지 각각 1000조 원 규모로 자랄 것으로 내다본다. 나는 이 두 바다를 합쳐 감히 2000조 시장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시장의 심장이 부산에서 뛰고 있다고 믿는다.
먼저 전기다. AI가 전기를 삼키기 시작했다. 데이터센터 하나가 도시 하나만큼 전력을 먹는 시대에 땅 위의 발전소는 짓는 데만 10년이 걸린다. 하지만 육상의 전력망은 수십 년 전 그대로다. 땅이 못 하면 바다가 한다. 액화천연가스(LNG)를 실어와 바다 위에서 기체로 되돌리는 해상 터미널 FSRU, 그 가스로 전기를 만드는 해상 발전선 파워십, 그 전기를 그 자리에서 받아쓰는 바다 위 데이터센터. 이것이 ‘LNG TO POWER’, 첫 번째 1000조 시장이다.
다음은 탄소다. 공장과 배가 내뿜은 탄소를 붙잡아 영하로 얼려 액체로 만들고 바다 위 저장 기지에 모았다가, 전용 운반선인 LCO2 캐리어에 실어 바다 밑에 영원히 묻는다. 노르웨이 북해에서는 육상 파이프라인 없이 오직 바다 위에서 탄소를 모으고 나르고 묻는 완전 해상 탄소 포집 CCS가 설계되고 있다. 이것이 두 번째 1000조, 해양 CCS 탈탄소 밸류체인이다.
두 시장의 심장은 하나다. 영하 163도, 극저온을 다루는 손이다. LNG를 얼려 부피를 600분의 1로 줄여 바다 건너 들여오던 그 손이, 이번에는 탄소를 얼려 바다 너머로 내보낸다. 같은 기술이 정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이다. 이 손이야말로 한국 조선을 지난 30년 세계 정상에 올린 힘이고, 부산의 기자재 공장들이 그 심장을 만들어 왔다.
세계는 이미 이 손을 찾아왔다. 지난해, 부산의 한 기업은 바람의 힘으로 배의 연료를 아끼는 장치를 세계 최초로 대형 가스운반선에 실어 띄웠고, 세계 최대급 해상 발전과 재기화 사업을 이끄는 글로벌 기업들로부터 FSRU의 핵심 설비를 잇달아 수주했다.
들여오는 손이 세계의 부름을 받았다면, 내보내는 손은 이미 부산에서 태어나고 있다. 부산의 또 다른 젊은 기업은 배와 발전소가 내뿜는 탄소를 그 자리에서 붙잡는 선상 포집 장치를 기존의 10분의 1 크기로 만들어 세계적 선급의 기본설계 인증을 받았고, 국내 최초로 연료전지 배가스의 탄소를 붙잡는 실증을 마쳤다. 붙잡은 탄소를 얼려 저장할 해상 기지도, 실어 나를 LCO2 캐리어도 결국 같은 극저온의 손에서 나온다. 포집에서 운반까지, 탄소의 전 여정이 이 도시 안에서 한 줄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북극항로는 이제 가정이 아니다. 올해는 우리 국적 선사가 시범 운항에 나선다.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2만 킬로미터 뱃길이 1만 3000 킬로미터로 줄어드는 길이며, 그 얼음의 바다가 실어 나를 화물의 첫 자리 또한 언 가스다. 얼음을 견딜 배도, 그 배의 심장도, 항로가 나를 에너지도 결국 극저온을 다뤄 본 손에서 나온다.
다만 한 기업이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져도 혼자서는 멀리 가지 못한다. 산업 전체가 연결되는 판이 깔려야 개별의 혁신도 열매를 맺는다. 지금 부산에 그 판이 국가의 힘으로 깔리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내려왔고 국적 선사의 본사가 뒤따르며 해사전문법원이 문을 열 채비를 한다. 여기에 해양 금융까지 더해지면 행정과 사법과 기업과 자본이 한 바다에 모인다. 해양수도의 본질은 청사의 이전이 아니라 생태계의 완성이다. 나는 그 답이 바다 위의 2000조, LNG TO POWER와 해양 CCS 밸류체인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 일에 ‘선샤인 밸류체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도시 곳곳에 흩어진 기술과 산업과 자본의 빛을 한 줄로 모으면 ‘빛’이 된다는 뜻이다. 마음껏 실증할 특구, 갓 싹튼 기술을 함께 키울 연구개발, 기술과 자본을 잇는 지역 금융의 안목이 그 사슬의 고리들이다. 도시와 정부의 손이 함께 얹혀야 완성되는 일이다.
2000조의 바다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해양수도라는 판과 탈탄소라는 시대, 그리고 이 도시의 도전하는 손들이 하나로 이어질 때, 부산 앞바다에 떠 있는 2000조는 비로소 이 도시의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