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말하지 않는 마음의 번역가

입력 : 2026-07-22 18: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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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배경에 따른 이해의 차이
일하는 방식에서도 큰 차이 보여

북미 팀원들의 냉정한 선 긋기는
감당할 약속만 하겠다는 정직함
한국 팀원들의 겸손·양보와 달라

배려와 소진 사이 균형 이루려면
경계 밖 마음을 제대로 이해해야

유버디 대기업 프로 재택러 유버디 대기업 프로 재택러

같은 문장을 두고도 사람마다 읽는 방식이 다르다.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도 이해하는 방식은 큰 차이를 드러낸다. 어떤 문화는 말한 그대로를 듣고, 어떤 문화는 말하지 않은 행간까지 읽어낸다.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는 전자를 저맥락(low-context) 소통, 후자를 고맥락(high-context) 소통이라 부른다. 흥미로운 건 어느 쪽도 틀리지 않다는 점이다. 다만 서로의 방식을 모른 채 마주 앉을 때, 한쪽은 왜 저렇게까지 하느냐고 묻고 다른 쪽은 왜 거기서 멈추느냐고 묻는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 팀을 이끄는 나는, 매일 이 두 문법 사이에 서 있다.

글로벌 기업의 한국 오피스에서, 그것도 재택으로 일한다는 건 하루에 두 개의 시계를 동시에 봐야 하는 일이다. 아침에 메신저를 열면 북미 팀원이 남기고 간 문장들이 잔뜩 쌓여 있다. 우리의 아침과 그들의 오후가 포개지는 시간은 고작 한 시간 남짓. 서머타임이 끝나야 그 시간은 두 시간으로 늘어난다. 겨우 한 시간 늘었을 뿐인데도 체감은 크다. 그 짧은 시간이 끝나고 나면 남은 하루는 각자의 몫이다. 우리는 서로가 편히 저녁을 보낼 수 있도록 바통을 넘기며 일한다.

북미의 동료들은 더없이 친절하다.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에서 내 문장이 더듬거려도 끝까지 기다려주고, 실수를 말할 때조차 상대가 다치지 않을 표현을 고르는 기미가 역력하다. 다만 그 친절에는 또렷한 경계가 있다. 퇴근 시간이 지나면 메신저에는 답장이 없다. 자기 몫이 아닌 일 앞에서는 담당자를 정확히 짚어 일을 넘긴다. 처음엔 조금 서운했지만 이내 알았다. 그것은 무심함이나 냉정함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예의였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약속만 하겠다는 정직함이기도 했다. 저맥락의 세계에서는 말한 만큼이 곧 책임의 크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팀원들과 일할 때 나는 다른 종류의 감정을 느낀다.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한 번 더 확인해 봤습니다”하는 메시지. 담당이 애매한 일을 맡게 됐을 때 “저한테 주시면 해보겠습니다”라며 먼저 손드는 사람. 요청받은 항목만 채우면 그만인데도 다음 단계에 필요할 자료까지 정리해 보내는 팀원. 정해진 몫의 경계를 넘어, 결국 이 일이 잘 되게 만드는 데까지 마음을 쓰는 태도다. 말하지 않은 행간을 읽어내는 고맥락의 문법이, 일의 세계에서는 끝까지 책임지는 얼굴로 나타나는 셈이다.

팀을 맡고 나서 알게 된 애환이 하나 있다. 이 마음이 저쪽의 문법으로는 자동 번역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밤새 고쳐낸 결과물을 앞에 두고도 우리 팀원들은 “아직 조금 부족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 문장을 그대로 옮기면 바다 건너 저편에서는 정말 미완성인 작업으로 읽힌다. 그래서 팀장의 일 가운데 절반은 번역이다. 겸손을 성과로, 묵묵함을 기여로 옮겨 적는 일. 북미 팀원이 자기 작업을 또렷한 문장으로 설명하는 동안, 한국 팀원들은 이미 다음 수정본을 따로 저장해두기까지 한다. 팀장이 된 지 오래지 않은 나는, 아직 이 번역이 서툴다. 어떤 날은 팀원의 “괜찮아요”가 진짜 괜찮은 건지 몰라 두세 번을 되묻는다. 다만 분명한 건, 말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그 노력을 지켜보는 일이 팀장에게 주어진 몫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미덕에는 그늘도 있다.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이 늘 정해져 있으면, 그 책임은 어느새 당연한 것이 되어 한 사람을 갉아먹는다. 배려로 시작한 일이 소진으로 끝나는 장면을 나는 너무 많이 봤다.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도와달라는 말을 가장 늦게 꺼낸다. 그래서 북미식 경계 역시 배워야 할 지혜다. 자기 몫을 분명히 하는 일은 무책임이 아니라 오래 일하기 위한 설계이며, 잘 쉬는 사람이 결국 더 오래 책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문법은 어느 하나를 버리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에게서 배워야 할 문제다.

요즘처럼 각자의 몫만 정확히 해내면 된다고 말하는 시대에, 정해진 선 너머까지 마음을 쓰는 사람은 점점 귀해지고 있다. 효율의 언어는 역할과 경계를 중시한다. 하지만 조직을 끝까지 굴러가게 하는 건 그 경계 바깥을 메우는 마음이다. 계약서에도 직무 기술서에도 적히지 않는 이 성실은,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오래 당연하게 여겨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은 계산 없이 고마움을 적어두고 싶다.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한 번 더 확인해준 사람들, 자기 일이 아닌데도 먼저 손을 든 사람들에게. 성과는 숫자로 기록되지만, 그들이 조용히 메워둔 빈틈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어떤 문법에도 적히지 않지만, 함께 일해본 사람만이 아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을 저편의 언어로 옮기는 일이 서툰 팀장인 내 몫이라면, 앞으로 더 잘 번역하기 위해서라도 오늘 이 고마운 마음을 기록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