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오페라하우스의 첫 무대, 부산의 위대한 꿈을 노래하자

입력 : 2026-09-23 15:58:43 수정 : 2026-09-23 15: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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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택 유엔평화기념관 관장


부산 북항에 새로운 오페라하우스가 문을 연다. 바다를 향해 열린 이 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부산이 걸어온 시간을 품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향해 문을 여는 새로운 문화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그 첫 무대에서는 무엇을 노래해야 할까?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를 초청해 화려한 개관 공연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부산의 첫 무대에서 세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보다 부산이 걸어온 위대한 이야기를 세계의 예술언어인 오페라로 만들어 들려주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그래서 북항 오페라하우스의 첫 작품으로 ‘부산, 위대한 꿈’을 제안하고 싶다. 부산의 현대사는 한 편의 거대한 오페라와 닮았다. 일제강점기의 어둠 속에서도 나라의 독립을 꿈꾼 사람들,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 부산으로 몰려든 피란민들, 불타버린 부산역과 폐허가 된 도시, 그리고 그 잿더미 위에서 다시 삶을 일으켜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중심에 윤상은과 윤인구 부자의 꿈을 놓을 수 있다. 아버지 윤상은이 나라의 독립을 꿈꾸며 부를 일구었다면, 아들 윤인구는 교육을 통해 사람을 키우는 것이 나라의 미래를 만드는 길이라고 믿었다.

해방 직후인 1946년 5월 15일, 부산대학교는 지역민들의 헌금과 교육에 대한 열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국립대학으로 출범했다. 그리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대학의 미래를 위해 뛰었던 윤인구 초대 총장 앞에 위트컴 장군이 있었다. 윤인구가 대학의 꿈을 설명하자 위트컴 장군은 그 꿈을 자신의 일처럼 받아들였다. 그는 현재의 장전동 약 50만 평에 이르는 캠퍼스 부지 확보와 공사 지원에 힘을 보탰고, 미 공병부대를 동원해 온천동과 부산대 사이를 잇는 도로까지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전쟁 중인 나라에서 대학을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미래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위트컴 장군의 이야기는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1953년 부산역 대화재 때 군수창고를 열어 이재민을 도왔고, 의료기관과 전쟁고아 지원에도 힘을 보탰다. 특히 부산대의 터전을 마련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전쟁이 끝난 뒤 한국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키우는 일에 힘을 보탰다.

집은 오늘을 살게 하지만 교육은 내일을 살게 한다.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한 사람을 구하지만, 한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그가 살아갈 수많은 내일을 바꾼다. 부산은 그렇게 다시 일어섰다.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가진 것이 거의 없었음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씨앗을 심었고, 누군가는 그 씨앗에 물을 주었으며, 누군가는 폭풍 속에서도 나무를 지켰다. 오늘의 부산은 이름 없이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어제 위에 세워져 있다.

그래서 북항 오페라하우스의 첫 무대는 특별해야 한다. 세계의 유명 작품을 부산에서 공연하는 것은 세계를 부산으로 불러오는 일이다. 그러나 부산의 이야기를 세계적인 오페라로 만들어 세계에 들려주는 것은 부산을 세계로 보내는 일이다. 진정한 문화도시는 세계의 작품을 소비하는 도시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창조해 세계에 들려주는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부산은 전쟁을 경험한 도시다. 그러기에 평화를 말할 자격이 있다. 가난을 경험한 도시이기에 나눔을 말할 수 있다. 폐허에서 일어난 도시이기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북항은 과거의 부산항과 미래의 부산이 만나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울려 퍼지는 첫 노래 역시 과거를 넘어 미래를 향해야 한다. 한 사람의 꿈이 한 도시의 꿈이 되고, 한 도시의 꿈이 한 나라의 꿈이 되며, 마침내 인류의 꿈이 될 수 있다. 부산은 이미 그것을 보여주었다. 폐허에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이제 북항 오페라하우스에서 부산은 다시 세계를 향해 꿈꾸어야 한다. ‘부산, 위대한 꿈’. 그것은 지나간 부산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미래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첫 무대의 마지막 합창은 아마 이렇게 끝나야 할 것이다. “우리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부산의 꿈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