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대법원장 정면충돌, 헌법 근본정신 생각해야

입력 : 2026-09-24 05: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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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재판받을 권리 침해당할 지경
3권 분립 정신 따라 절차 이행해야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영교 위원장 등이 23일 조희대 대법원장 대법관 재제청 거부 관련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원내대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서영교 위원장 등이 23일 조희대 대법원장 대법관 재제청 거부 관련 서울 서초구 대법원을 항의 방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대법관 재제청 요청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이 해외 순방중인 상황에서 기습적으로 재제청을 거부했다는 사실을 부각해 ‘빈집털이’에 비유하며 대법원장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 중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재제청은 대통령이 대법관을 고르는 소위 ‘쇼핑’에 해당한다며 더 나아갈 경우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맞불을 놓았다.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법관에 대한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 대통령의 임명 권한이 전례 없이 상충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국민들은 대법관 공석에 따른 재판받을 권리 침해까지 우려해야 할 판이 됐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22일 입장문을 내고 “달리 (대법관에 대한) 재제청 요청을 정당화할 구체적인 헌법적 근거와 사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재제청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장은 청와대가 지난달 말 보낸 대법관 후보자 재제청 요청 문서에는 구체적인 사유와 헌법적 근거가 적혀 있지 않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청와대가 보낸 재제청 요청 문서엔 ‘헌법 제104조2항 등에 따라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이 명기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조 대법원장은 이를 구체적 사유와 근거로 보지 않았다. 이는 조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후보자가 아닌 후보를 제청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대법관 임명을 놓고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대통령의 임명권이 이렇게 충돌하는 사이 동의권을 가진 국회는 갈등의 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민주당은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를 ‘내란’이라는 용어를 동원해 가며 비난하고 국힘은 일제히 대법원장 결사 엄호에 나서는 모양새다. 문제는 갈등이 심화하고 고착하면서 장기화할 경우 내년 6월 조 대법원장 퇴임까지 대법관 공석 사태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법관 한 명이 연간 3000~4000건의 사건을 처리하는 점을 감안하면 상고심 처리 지연 사태 우려까지 나온다. 국민의 권리를 지켜야 할 국가기관들이 빚은 갈등이 되레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지경이 된 것이다.

헌법에서는 한때 사법권 독립을 위해 대법원장의 제청권에 대통령의 임명권이 기속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3권 분립 정신이 더욱 명확해지면서 결국 제청권과 임명권, 국회의 동의권은 동등한 지위가 됐다. 동등해진 만큼 갈등이 벌어지면 조정이 쉽지 않고 그 결과 작금의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이번 사태는 헌법의 근본정신으로 풀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제청된 후보의 임명을 거부할 수 있다. 그 경우 결격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국회 임명동의 절차를 밟는 게 옳다. 국회 동의를 얻지 못하면 대법원장은 즉시 새 제청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국가기관의 권한은 그 크기만큼 명확성과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