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2위 항만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들의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산복도로까지. 부산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이내믹 한 풍경이 있는 만큼 부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직업들도 많습니다. 이외에도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산일보는 이러한 분들을 '기자니아' 영상 콘텐츠에 담고 있습니다. ‘기자니아’는 ‘키자니아(어린이 직업체험 시설)’와 ‘기자’의 합성어로, 기자들이 직접 직업을 체험해 본다는 콘셉트입니다. 체험과 동시에 직업에 얽힌 부산만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담고자 합니다. 영상들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 혹은 유튜브에 '기자니아'를 검색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연말을 맞이해 술자리를 가지는 분들 많으실 텐데요. 이맘때 술집이 즐비한 거리를 걷다 보면 정신을 잃은 채 만취한 상태로 길에 누워있는 분들을 종종 마주칠 수 있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보호자와 연락이 닿아 귀가시키면 좋겠지만, 실상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주취자를 상대로 보호자의 연락처를 알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병원 응급실 등에 주취자를 인계하려고 해도 외상이 없는 단순 주취자일 경우 입원이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주취자를 경찰 지구대로 데려와 보호하다가 갑작스러운 이상 증세를 보일 경우 신속한 응급 처치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렇게 보호자와의 연락이 닿지 않는 단순 주취자들을 술이 깰 때까지 보호하는 '주취해소센터'가 전국 최초로 지난해 4월 부산의료원 응급실 옆에 문을 열였습니다. 이곳에는 경찰 6명, 소방대원 3명이 3교대로 24시간 근무합니다. 이곳에는 주취자가 잠을 잘 수 있는 낙상 방지용 침대 3개가 있습니다. 각종 폭언을 듣는 것은 예삿일이고 주취자들의 토사물까지 치워야 하는 극한 업무 환경입니다. 지난달 29일 금요일, 불금 새벽의 부산주취센터에서 하루동안 근무해 봤습니다.
지난달 29일 오후 11시께. 부산 연제구 거제동에 위치한 부산의료원 응급실 바로 옆 부산광역시 주취해소센터에 들어섰지만 아직 주취자는 없었습니다. 센터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최광현 경위는 "주취자들이 몰리는 때라는 것 딱히 없다"라며 "해가 뜨고 나서 주취자가 발견돼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 케이스가 제각각이다"라고 전했습니다.
오늘 기자에게는 주취자가 센터에 도착하면, 체온을 재고 머리 등에 외상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주어졌습니다. 또한 만약 여성 주취자가 오는 경우 여기자인 기자가 이들을 화장실에 데려가거나 병상으로 옮기는 일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주취해소센터는 개소 이후 1년간 총 537명의 주취자를 평균 4.6시간 동안 보호했습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2.3배 더 많았고, 평일보다 주말 동안 1.35배 많은 인원이 센터를 찾았습니다.
경찰 혹은 소방이 주취자 신고를 받으면 센터 쪽으로 남은 병상이 있는지 문의하게 됩니다. 이때 보호자와 연락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 외상이 없고 난동을 피우지 않으면 센터로 인계될 수 있습니다.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듣고 있는 도중에 전화벨이 울립니다. 30일 오전 0시 30분께 50대 여성 주취자를 보호할 수 있냐는 문의 전화가 도착했습니다. 지인과 함께 있긴 하지만, 지인이 주취자 집의 비밀번호를 몰라서 집에 데려다 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여성은 구급차를 타고 센터에 곧바로 도착했습니다. 소방관과 경찰관과 함께 주취자를 병상으로 들어서 옮기는데, 의식이 없는 상태로 축 늘어져 있다 보니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혈압, 체온, 맥박, 산소포화도 등을 확인했지만 다행히 이상 없었습니다. 주취자는 그대로 잠들었습니다. 도착한 지 약 2시간이 지났을 때,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주취자가 깨어났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술이 깨지 않아 거동이 어려운 상태. 평소라면 센터엔 남성 소방관·경찰관만 있어 주취자 혼자 들어가거나 여성 경찰관 혹은 여성 간호사를 불러야 했을 테지만, 오늘은 여성인 기자가 함께 주취자를 부축해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축 늘어진 주취자를 겨우 변기에 앉혔습니다. 하지만 그 상대로 다시 잠이 들었고, 뒤처리 후 잠을 깨워 다시 화장실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부산소방재난본부 구조구급과 이병국 소방사는 "이분 정도면 양호한 상태다"라며 "소변을 그대로 누워서 보시는 분들도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주취자를 묻는 질문에 최 경위는 "주취자가 토를 너무 많이 해서 하수구가 막힌 경우도 있고, 그냥 바로 대변을 보시는 경우도 있다"라며 "새벽에 그런 일이 발생하면 우리가 치우는 수밖에 없다"라고 토로했습니다.
첫 주취자가 오전 4시 30분께 깨어났습니다. 완전히 의식을 회복한 듯 보였습니다. 센터는 주취자가 완전히 깬 뒤 귀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콜택시를 불러 주취자의 집주소를 확인한 후 안전하게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 주취자는 "너무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감사함을 표하며 센터를 떠났습니다. 병상의 시트를 갈고, 소독하는 것을 끝으로 첫 주취자 업무를 마무리했습니다.
업무를 마무리하자마자 또 전화가 울립니다. 이번엔 20대 여성 주취자가 경찰 순찰차를 타고 도착했습니다. 겉옷이 없는 상태로 목도리와 휴대폰만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짧은 치마를 입고 있어 남성 경찰관이 쉽사리 옮기기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기자가 나서 안전하게 병상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외상은 없었으나 추운 날 길거리에 있었던 탓인지 체온이 조금 낮았습니다. 그리고 구토를 한 흔적이 몸 곳곳에 남아있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오늘 주취자들 중에서는 건강에 이상이 있는 분들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뇌경색 등의 증상이 있어 곧바로 부산의료원 응급실로 옮겨 목숨을 구한 주취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노광철 경위는 "뇌경색 증상을 보이는 주취자가 있었다"라며 "술에 취한 증상과 뇌경색으로 인한 증상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다행히 바로 여기서 조치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센터가 없었더라면 이 추운 날 주취자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했을지 장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경찰 일선에선 주취자로 인해 업무과중·방해에 시달려 왔는데, 센터로 인해 그 업무를 덜게 됐습니다. 누구나 '기분이 좋아서', '슬픈 일이 있어서' 한잔씩 걸치다 보면 만취 상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지인과 가족도 주취자가 되어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만취자를 발견한다면 내 가족, 지인이라고 생각하며 꼭 신고해 센터로 갈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적당한 음주가 선행돼야겠죠. 안전한 음주로 행복한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