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를 겨냥한 탄핵 초읽기에 들어갔다.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은 헌정사상 전례가 없다.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지체하면 즉각 탄핵 절차를 밟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가결 정족수 논란 등을 뚫고 탄핵안이 가결될 경우, 전례 없는 ‘대행의 대행’ 체제를 맞기에 정국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26일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어 27일 본회의에서 곧바로 탄핵안 표결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야당이 발의한 탄핵안에는 “한 권한대행이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고, 대통령의 위헌·위법한 행위를 방조 또는 방치함으로써 대통령에 대한 보좌의 책임도 수행하지 못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에 앞서 한 권한대행은 이날 오후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초 민주당은 27일 탄핵안을 발의한 뒤 30일 본회의에서 표결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한 권한대행의 보류 결정에 시점을 앞당긴 것이다. 보류 결정은 사실상 ‘임명 거부’에 가깝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며 “합의안을 제출하면 즉시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가 헌법재판관 임명과 관련한 합의안을 마련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주당은 즉각 헌법재판관을 임명해 9인 체제의 헌재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민의힘은 현재 6인 체제의 헌재로 심판하는 게 맞고, 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권한을 넘어선 일이라며 맞서고 있다.
특히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이 같은 헌법재판관 임명 절차 강행이 탄핵 심판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결국 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의 뜻은 임명 거부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이로써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을 향한 탄핵에 한층 속도를 붙일 전망이다. 현직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이어 그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절차를 밟는 것은 헌정사상 전례가 없다. 한 권한대행 탄핵 절차를 앞둔 상황 속 최대 관건은 ‘가결 정족수’이다. 야당은 151석, 여당은 200석을 주장한다. 민주당 등 야당은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이 아니기 때문에 국무총리 탄핵 기준(재적의원 과반)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권한대행이기에 대통령에 준하는 기준(재적의원 3분의 2)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정족수를 국무총리 기준으로 한다면 한 권한대행 탄핵안은 야당 단독으로 가결이 가능하다. 국민의힘 기준으로는 야당 단독 가결이 불가능하다. 야당이 주장하는 기준으로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국민의힘에서 8표의 이탈 표(찬성)가 나와야 한다. 다만 여당 내에서는 계파를 떠나 “권한대행 탄핵은 말도 안된다”는 기류가 지배적이다.
여야는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안 가결 정족수를 두고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다. 다만 명시된 기준은 없다. 당장 이를 결정할 ‘키’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쥐고 있다. 민주당 출신의 우 의장은 야당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도 직무가 정지된다.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탄핵 추진에 맞서 헌재에 권한쟁의심판과 효력정지 가처분을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이 통과되면 규정에 따라 다음 바통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돌아간다. 이른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현실화하는 것이다. 최 부총리가 대행직을 맡더라도 ‘숙제’는 인수인계된다. 쌍특검법(내란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 공포 여부와 헌법재판관 임명 등이다. 쌍특검법 거부권 행사 시한은 내년 1월 1일로 이 경우 최 부총리는 대행직을 맡게 됨과 동시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처지다.
한 권한대행 탄핵안이 가결될 경우 시나리오는 이같이 흘러가지만, 이 경우 민주당을 향한 후폭풍도 거셀 것으로 보인다. 초유의 ‘대행의 대행’ 정국을 이끌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민주당 등 야당은 한 권한대행 탄핵에 명분이 분명하다고 보고 있다”며 “쌍특검 공포와 헌법재판관 임명을 계속 거부할 경우 민주당은 끝까지 밀어붙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곽진석 기자 kwa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