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손바닥 뒤집 듯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해제를 번복하면서 애꿎은 지방 부동산 시장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강남 집값이 널뛰기하는 동안 투자자들의 ‘서울 불패’ 인식은 공고해져 지방 자본마저 서울로 유입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을 다시 조이게 되면, 겨우 고개를 내밀던 지방 부동산 수요마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와 서울시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아파트 전체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한다고 19일 밝혔다. 서울시가 지난달 12일 잠실·삼성·대치·청담을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전격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지 겨우 35일 만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이후 강남 3구에서 시작된 집값 급등이 다른 지역으로 번져나가자 해제 구역을 재지정하는 데서 나아가 더 넓은 구역을 새로 묶어버린 것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풀렸던 한 달 사이 서울 부동산은 그야말로 ‘불장’이었다. 이달 둘째 주 송파구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72%, 강남구는 0.69%, 서초구는 0.62%씩 올라 7년여 만에 가장 높은 상승세를 보였다. 강남 3구를 중심으로 갭투자 비율이 상승하며 투기성 거래의 증가 신호도 포착됐다. 강남 3구의 집값 급등은 서울 전체로 퍼지는 모양새였다.
그러는 사이 지방의 집값 하락 폭은 더욱 커졌다. 3월 둘째 주 기준 부산의 아파트값은 전주 대비 0.08% 떨어졌고 대구(-0.10%)와 세종(-0.14%), 제주(-0.06%) 등도 하락해 평소보다 하락폭이 컸다. 특히 부산의 집값은 2022년 6월 이후 단 한 번의 상승 전환 없이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서울시의 부동산 정책이 지방 부동산 추락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특히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해제되면 실거주 의무가 사라지기에 지방에 거주하는 ‘큰손’들이 언제든 서울에 투자할 수 있다.
부동산서베이 이영래 대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으로 전국의 투자자들에게 ‘서울 불패, 지방 필패’라는 인식이 더욱 공고해졌다”며 “투자 심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부동산 시장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서울 밀어주기’로 애먼 지방 부동산 시장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금융당국이 서울 집값 급등으로 인한 가계대출 증가를 우려하며 대출 조이기에 나설 전망이라 상황은 더욱 우려스럽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부동산 관계 기관 회의’를 열고 주요 지역 가계대출 관리 강화 방침을 밝혔다.
지역별로 나눠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당국의 기조가 대출 규제 강화 방향으로 정해졌기에 지방의 실수요자들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아도 오는 7월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시행을 앞두고 있는 탓에 시장의 부담은 더욱 크다.
국민의힘이 최근 서울과 지방의 부동산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지방에 한해 다주택자 중과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여야 합의가 녹록치 않을 전망이다.
동아대 부동산학과 강정규 교수는 “지난해 전국적인 부동산 침체기에도 수도권 일부 지역은 부동산이 ‘과열됐다’고 표현할 정도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양상은 극명히 다르게 전개됐고, 서울이 오르면 부산 등 지방이 따라서 오르는 현상은 이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며 “정부는 서울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서울과 지방의 규제, 세제, 금리 등을 이원화하는 부동산 부양책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