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북구 화명동 와석교차로 일대 하늘에서 포착된 떼까마귀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부산 북구 화명동 와석교차로 주변 전선에 앉아 있는 까마귀들 모습. 김준현 기자 joon@
부산 도심에서 불청객 까마귀 떼와 시민들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수백 마리가 도심 한복판에 터전을 잡은 탓에 길거리마다 새똥 자국이 가득한 데다 시민들은 새똥 테러에 머리를 감싸고 다니는 지경이다. 전문가는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가 따뜻한 부산으로 집결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겨우내 까마귀 소동이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8일 오후 5시 30분께 부산 북구 화명동 와석교차로. 하늘이 어스름해지는 시간 이날 ‘까마귀 퇴치대’로 편성된 북구청 공무원 5~6명과 자연보호부산북구협의회회원 2명이 와석교차로에 집결했다. 북구청 환경위생과 박필준 주무관은 “자동차나 시민을 맞추지 않도록 조심합시다”는 주의 사항을 고지하며 이들에게 레이저 포인트를 나눠줬다. 빛에 민감한 까마귀를 쫓기 위한 그들만의 무기다. 이들은 곧바로 사전에 정해진 다섯 군데 지점으로 흩어져 곧 있을 까마귀 떼와의 사투를 준비했다.
오후 6시께 롯데마트 건물 위 까마득한 높이의 하늘에 까마귀 수백 마리가 벌떼처럼 나타났다. 박 주무관은 까마귀 떼를 보고 “일종의 선봉대”라며 “오늘 쉴 곳을 확인하고 다른 까마귀들에게 모이라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말부터 이어진 까마귀 퇴치 활동으로 박 주무관은 전문가 같은 모습으로 설명했다.
까마귀 수백 마리가 와석교차로 일대 전기줄에 앉자, 공무원들은 일제히 머리나 몸통 부분에 레이저를 쏘기 시작했다. 도망가지 않는 까마귀를 쫓아내기 위해 꽹과리까지 동원됐다. 교차로를 지나가는 시민들은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행여 새똥에 맞을까 손으로 머리를 가리며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날 와석교차로에서 만난 강 모(35·북구) 씨는 머리 위 까마귀를 보며 “하늘에 구멍 같은 게 생긴 것처럼 너무 징그럽다”며 “길바닥에도 새똥 자국이 가득해 보기 좋지 않다”고 말했다.
21일 부산 북구청에 따르면 지난달 20일부터 북구 덕천동 일대에 수백 마리 까마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떼까마귀로 파악된 이들 무리는 구포동을 거쳐 현재 화명동 일대에 자리 잡았다. 낮에는 경남 김해나 강서구 일대에서 먹이 활동을 하다 밤이 되면 화명동 일대 전선에서 잠을 청하는 습성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도 구포동 일대에 떼까마귀가 나타났으나 화명동에 자리를 잡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라는 게 북구청 공무원 설명이다.
전선에 빼곡히 들어선 까마귀에 주민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길거리가 새똥으로 더러워지는 것을 넘어 직접 새똥을 맞거나 까마귀 떼가 공포, 혐오감 등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SNS에는 ‘조류를 싫어해 소름이 돋는다’, ‘똥 테러만 안 당하길 바란다’ 반응 등이 공유되고 있다. 구청에만 이런한 민원이 지난 한 달 동안 약 200건 접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까마귀 떼가 단순 보금자리로 화명동 일대에 머무르는 덕분에 먹이 활동으로 쓰레기 봉투를 헤집는다는 민원은 접수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겨울 철새인 떼까마귀가 비교적 따뜻한 부산에 겨울 내내 장기 체류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낮에 논이나 밭에서 먹이 활동을 한 후 밤에는 천적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도심지에 모이는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이원호 조류 박사는 “울산 방면에서 약 3만 마리 정도가 따뜻한 부산 쪽으로 남하한 것으로 보인다. 겨울철 내내 부산에 체류할 가능성도 있다”며 “도심지가 아닌 곳에 대체 서식지를 마련하거나 까마귀가 쉴 수 있는 공간을 없애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준현 기자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