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극해 통과해 유럽 닿은 팬스타 아크로호 “유빙 헤치고 강풍 버티며 운항”

입력 : 2026-09-12 09:41:06 수정 : 2026-09-12 14:5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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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첫 현지 인터뷰… 선원들에게 듣는 21일간의 기록
서명원 선장·노현 1등 항해사 얼굴엔 피로 속 자부심
축치해 유빙 둘러싸여 정지 상태로 강풍과 조류에 떠밀려
랍테프해 순간 최대 40노트 강풍과 싸우며 버티기도
부산 돌아가는 시기 북극해역 얼음 결빙 속도 등 관건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현지 시간 11일 오후 8시 30분께 첫 기항지인 영국 펠릭스토우(Felixstowe)항에 입항하고 있다. 박혜랑 기자 rang@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현지 시간 11일 오후 8시 30분께 첫 기항지인 영국 펠릭스토우(Felixstowe)항에 입항하고 있다. 박혜랑 기자 rang@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의 부산~영국 펠릭스토우 구간 안전 운항을 이끈 서명원(왼쪽) 선장과 노현 1등 항해사. 박혜랑 기자 rang@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의 부산~영국 펠릭스토우 구간 안전 운항을 이끈 서명원(왼쪽) 선장과 노현 1등 항해사. 박혜랑 기자 rang@

“20여 일의 항해 동안 마주한 수많은 변수에 치열하게 대응해 왔습니다. 남은 귀항길도 두려움보다는 기대가 큽니다.”

영하의 칼바람과 꽁꽁 얼어붙은 바다를 뚫고 달려온 팬스타 아크로호가 닻을 내린 현지 시간 11일 오후 8시 30분께, 영국 동부의 주요 관문 항만이이자 휴양지인 펠릭스토우(Felixstowe)항에는 25도 안팎의 온화한 바람이 감돌고 있었다. 이날 오후 11시께 현장에서 만난 선원들의 얼굴에는 21일간 극한 운항을 버텨낸 피로가 역력했지만, ‘국내 최초 컨테이너선 북극항로 운항’이라는 이정표를 세웠다는 자부심 또한 가득했다.

남부권 해양수도 도약의 핵심 동력이자 ‘꿈의 뱃길’로 불리는 북극항로(NSR)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마침내 극지의 험로를 뚫고 유럽 땅에 닿았다. <부산일보>는 첫 기항지인 펠릭스토우항에서 서명원 선장과 노현 1등 항해사를 만나 21일간 사투에 가까웠던 항해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선원들은 거대한 유빙과 돌풍 등 가혹한 자연환경을 치밀한 데이터 분석으로 극복해냈으며, 이번 운항을 통해 극지 운항 노하우를 값진 자산으로 축적했다고 전했다. 팬스타 아크로호는 이곳에서 일부 컨테이너를 내린 뒤 13일 네덜란드 로테르담, 16일 폴란드 그단스크를 거쳐 다음 달 12일께 부산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 직진하다 돌아선 항적의 비밀… ‘정시성’과 ‘안전성’ 사이 줄타기

북극항로를 둘러싼 국내외 시선에는 ‘운항 일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줄 것’이라는 기대와 ‘극지 기후로 인한 불확실성’이라는 우려가 공존했다. 서 선장은 항해 내내 ‘정시성’과 ‘안전성’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극지운항 규정(Polar Code)에 따라 얼음 해역에서는 안전 속력(약 12노트)을 유지해야 해 자칫 입항 일정이 지연될 위험이 상존했다”며 “정시성을 지키면서도 배와 선원의 안전을 담보하는 밸런스를 잡는 데 모든 신경을 곤두세웠다”고 털어놨다.

이러한 고뇌는 선박의 항적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난달 22일 부산항 신항을 출항한 팬스타 아크로호는 지난달 31일 축치해에서 첫 난관을 맞았다. 사방에 널린 유빙이 선박의 앞길을 완전히 둘러싼 것이다. 당시 아크로호는 연안을 따라 우회하다 갑자기 뱃머리를 반대로 돌리며 구불구불한 궤적을 그렸다.

노 항해사는 “브랑겔섬 남부 해역 진입 중 사방으로 흩어진 얼음 탓에 통항로가 막혔고, 야간이라 육안이나 레이더로 유빙을 분별하기 어려워 안전을 위해 날이 밝을 때까지 속도를 ‘0’으로 낮추고 정지 상태로 대기했다”며 “엔진을 끄고 표류하는 동안 극지의 강한 바람과 조류에 떠밀리면서 궤적이 지그재그로 찍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안전을 확보하며 북쪽으로 뱃머리를 돌린 팬스타 아크로호는 랍테프해에서 순간 최대 40노트에 달하는 강풍과 마주했다. 노 항해사는 “바람이 거세지면 유빙이 배보다 빠른 속도로 밀려와 선체를 향해 쇄도한다”며 “방향타를 조작해도 선체 제어가 쉽지 않아 속도를 최저로 낮추고 조류와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타각을 크게 꺾으며 버텼다”고 당시의 급박함을 전했다.

이후 랍테프해와 카라해를 잇는 빌키츠키 해협에서는 빙산 파편 형태의 두껍고 단단한 얼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서 선장은 “선체 충돌 시 치명타를 줄 수 있는 빙산 조각을 피하기 위해 선속을 줄이고 회피 기동을 반복하며 해협을 통과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팬스타 아크로호는 북극해에 진입한 지 9일 만에 위험지역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현지 시간 11일 오후 8시 30분께 첫 기항지인 영국 펠릭스토우(Felixstowe)항에 입항하고 있다. 팬스타그룹 제공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현지 시간 11일 오후 8시 30분께 첫 기항지인 영국 펠릭스토우(Felixstowe)항에 입항하고 있다. 팬스타그룹 제공

■ 갑판 출입 금지에 갇힌 일상… ‘하루 25시간’ 시차 피로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20여 일을 버텨내야 했던 선원들의 고충도 적지 않았다. 선내 난방은 정상 가동됐지만, 결빙과 안전사고 위험 탓에 외부 갑판 출입이 전면 통제되면서 밀폐된 공간에서 오는 답답함이 상당했다. 서 선장은 “선내에 러닝머신 등 체육 장비를 넉넉히 비치해 선원들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동쪽에서 서쪽 고위도 해역으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매일 1시간씩 하루가 늘어나는 ‘하루 25시간’의 시차도 복병이었다. 서 선장은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매일 1시간씩 연장되는 환경이 이어지다 보니, 수면 패턴이 완전히 깨져 이른 시간에 깬 뒤 다시 잠들지 못하는 만성 피로가 이어졌다”고 토로했다.

만일의 고립 사태에 대비해 한 달 치 이상의 비상 식량을 추가 적재하고 운항한 점도 일반 항해와는 다른 풍경이었다.


■ 귀향길 얼음 더 빨라져… “10월 첫째 주 북극해 탈출이 마지노선”

첫 시험대는 성공적으로 통과했지만 진짜 승부는 귀항길이다. 팬스타 아크로호가 유럽 기항을 마치고 이달 말 다시 북극해를 통과할 시기에는 극지의 결빙 속도가 한층 빨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북극해역 초반 진입 당시 애를 먹었던 축치해 브랑겔섬 남부 해역이 복귀 항해의 최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현장에서는 올해 북극해역이 예년보다 일주일가량 일찍 기온이 급강하하며 유빙 형성이 가속화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노 항해사는 “러시아 육지 쪽에서 남풍이 불어 유빙을 외해로 밀어내고 연안 쪽 물길이 열리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라며 “남쪽 항로가 얼음으로 막힐 경우에 대비해 브랑겔섬 북부 해역의 빙황(얼음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북쪽 우회로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본격적인 동절기 결빙과 해상 기후 악화를 피하고 다음 달 11~12일경 부산항에 정시 입항하기 위해, 10월 첫째 주 이전에 북극해를 빠져나오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펠릭스토우(영국)/글·사진=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