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우리 마음 속에 부처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부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중생에게, ‘당신 마음 속에 이미 부처가 있다’는 말은 허무합니다. 더구나 미디어를 장식하는 온갖 사건사고나, 요즘 최대 화제작인 OTT 드라마 '더 글로리' 같은 학교폭력 드라마를 보면 죄를 짓고도 떵떵거리며 권세와 영화를 누리는 사람이 허다합니다. 인간의 심신 어느 구석은 고사하고, 세상에 신이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드물게 인간 속에 부처가 존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생깁니다. 어느덧 22년 전, 일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남성을 구하고 숨진 유학생 이수현 씨가 그랬습니다. 내 목숨과 남의 목숨을 구분하지 않았던 불이(不異)의 정신. 이익을 보면 의(義)를 생각하고,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견리사의 견위수명)는 논어 말씀과 안중근 의사의 휘호를 그대로 실천한 고 이수현. 지난 14일 부산 영락공원에서 추모식이 열렸고, 도쿄에서도 다음 주 신오쿠보역 추모 동판 앞에서 추모식이 열립니다. 조선시대 통신사가 한·일 성신교린의 상징이었다면, 현대 한·일 화해의 가교이자 상징은 ‘이수현 정신’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수현 정신을 살리는 길은 무엇일까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일본 정부가 인류애라는 보편적 정신에 입각해 진정성 있게 사죄하고 반성하면 좋겠습니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협력을 위해 경제 대국 일본이 맡아야 할 역할이 여전히 큰데, 언제까지 과거에 발목 잡혀야 하는지 답답합니다.
이런 가운데 17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협력위원회 합동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일본 총리가 각각 외교부 차관과 주한일본대사가 대독한 축사를 통해 관계 개선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어떤 논의가 오가는지 관심을 모읍니다. 혹여 2015년 12월 졸속으로 이뤄져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온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 사례를 되풀이 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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