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 없이 이어진 금리 인상에 국제 에너지 대란에 따른 난방비 급등, 치솟는 물가에 서민 삶의 한기가 더 크게 느껴지는 나날입니다. 그런데 내일이 벌써 입춘입니다. 모레는 정월 대보름이고요. 평년을 웃도는 따뜻한 기온을 보이다 20년 만의 추위를 몰고 와 정신이 번쩍 들게 하기도 했던 올 겨울도 이제 서서히 기세가 약해져 가겠지요. 이미 매화는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봄을 기다리며 단심을 드러내는 동백도 곧 만발할 테지요.
자체적으로 술을 빚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술과 음식,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술도락 맛기행’이 이번에는 부산 동래 ‘기다림’이라는 양조장을 다뤘습니다. ‘동래아들’ 막걸리가 탄생하기까지의 숙성기간 100일은 조바심과 기대가 엇갈린 기다림의 시간이었겠지요. 주인장은 한파를 겪고 피는 동백이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인고의 시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해 양조장 이름도 '기다림'으로 짓고, 맛도 그런 숙성 과정을 형상화 했다고 합니다. 함께 먹기에 치즈 같은 부드러운 음식, 낙곱새 같은 매콤 칼칼한 음식도 잘 어울린다고 하니 도심 속 양조장에서 보낸 숱한 나날이 결코 헛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기사에는 판매처와 마실 수 있는 업소 안내도 친절히 되어 있습니다. 대보름 귀밝이술로도 좋겠네요.
살랑대는 봄기운에 몸이 들썩이면 주말에 가만히 집에 있기가 힘들지요. 이번 주 여행 기사는 부산에서 멀지 않은 벽화마을들을 소개했습니다. 마산 가고파꼬부랑길벽화마을, 고성 배둔골목정원과 초선벽화마을, 통영 동피랑마을입니다. 가족과 사진도 찍고 맛있는 음식도 나누며 다가오는 봄을 미리 느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오늘 특별히 눈에 띄는 기사는 부산 영락공원 무연고자실에 우키시마호 피해 사망자 유골이 최소 12구 있다는 사실을 부산일보와 서일본신문이 협력 취재로 밝혀냈다는 것입니다. 우키시마호 참사는 1945년 8월 일제의 항복선언 이후 강제징용 노동자와 가족들를 태우고 부산으로 돌아오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사고로 폭발한 우키시마호에서 최소 5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참사입니다. 영락공원 무연고자실에는 1970년대 송환돼 안치된 일반 강제징용자 유골이 대부분이었고, 유골을 보낸 일본이나 받은 우리 정부나 우키시마호 피해자를 별도 분류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 생존자와 유족이 제기한 손배소는 한·일 양국에서 기각·각하 되며 안타까움과 울분이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양국 시민들이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뉴스입니다.
이번 취재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옛 일본 해군시설부가 보유한 희생자 명단과 영락공원 무연고자의 본적지, 봉안 신청자 명단 등을 자매지인 부산일보와 서일본신문 기자들이 함께 확인하고 취재한 결과입니다. 두 신문은 기자를 서로 파견해 교환근무하는 결연을 맺은 지 올해로 21년이 됩니다. 교류 10주년을 맞아 출범했던 부산-후쿠오카포럼도 코로나19로 멈췄다 3년 만에 오늘과 내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열립니다. 역사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위정자가 있지만, 이를 감시하고 진실을 밝히는 언론도 있습니다. 상식과 진실에 기반한 부산과 후쿠오카의 교류·협력이 서울과 도쿄가 만들지 못하는 새로운 지역 발전의 패러다임을 만들어내리라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