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업주에 대한 첫 실형이 안타깝게도 부울경에서 나왔습니다. 지난해 3월 경남 함안 한국제강 공장에서 낡은 섬유벨트가 끊겨 떨어진 1.2t 무게의 방열판에 설비 보수를 하던 60대 협력업체 직원이 깔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고, 한국제강 대표에게 징역 1년 실형, 법인에게 벌금 1억 원의 1심 선고 판결이 26일 내려진 겁니다.
1심 재판 과정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검찰이 복수의 범죄를 하나의 죄명으로 다루겠다(실체적 경합)고 공소를 제기했는데, 재판부는 하나의 행위를 여러 죄명에 적용해야 한다(상상적 경합)고 봤다는 점입니다. 상상적 경합이 여러 죄 가운데 가장 형량이 무거운 죄를 처벌하는 반면, 실체적 경합은 법정형에 형량을 가감할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중대재해법의 입법 목적과 제정 경위를 고려할 때 중대재해 사고에 대한 형사책임을 경영 책임자에게 묻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고, 다수의 동종 전과를 반영해 엄중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검찰 공소보다 더 무거운 처벌이 가능한 양형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이 회사는 안전조치의무 위반으로 3차례 적발됐고, 이 사고 1년 전인 2021년 5월에도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중대재해 사고 3개월 뒤 사업장 감독에서 안전조치의무 위반이 다시 적발되자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 판결에 대해 노동계는 환영, 사업자들은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현재 경남 지역에서는 두성산업·만덕건설·엠텍·삼강에스앤씨 등의 사업장이 줄줄이 중대재해법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눈에 띄는 점은 중대재해사고가 났다고 해서 무조건 사업주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안전조치 의무 위반이나 산재 전력, 사고 이후의 개선 조치까지 충분히 검토한다는 점입니다. 과거 사고나 적발 전력이 없는데도 오로지 단 한 차례 사고로 과중한 처벌을 받는 것 아니냐는 것은 사업주들의 기우일 수 있다는 겁니다.
2021년 우리나라 노동자 1만 명당 산재 사망사고자 수를 일컫는 사망사고 만인율은 역대 최저치인 0.43이었습니다. 하지만 OECD 평균 사망사고 만인율은 우리보다 훨씬 낮은 0.29, 산업 구조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일본·독일은 각각 0.13, 0.15 수준에 그칩니다. GDP는 선진국이라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일터에서 숨진 노동자를 추모하는 것이 일상이어야 할까요. 이번 판결을 계기로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일에 노사정 모두가 힘과 지혜를 모아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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