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2030세계박람회를 유치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침체·소멸 위기의 지역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발버둥으로 요약됩니다. 당장 행사 개최를 위한 국가 차원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일어나지만, 행사 이후 부산이라는 도시의 세계적 인지도와 친밀도가 높아지면서 해외 자본의 진출과 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부산에서 엑스포를 개최해야 할 이유와 명분은 무엇으로 차별화 할 수 있을까요? ‘세계의 대전환,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항해’라는 슬로건으로 국제박람회기구(BIE) 회원국 대상 홍보 활동을 펴는 대한민국 부산의 명분은 불과 147년의 개항 역사를 거치는 동안 근대화와 산업화, 민주주의와 문화적 성취를 동시에 일궈낸 스토리입니다. 전후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당당히 선진국 반열에 올라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한국의 성공담은, 홍보 예산을 천문학적으로 쏟아붓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외관상 뒤지지만 자국의 발전을 바라는 BIE회원국들에게 닮고 싶은 모델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한국, 즉 과거 조선의 근대화는 항구를 열면서 시작되었고, 그 유적이 부산항 1부두로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1부두는 북항 재개발 과정에서 주변 바다를 매립해 없어질 뻔 했지만,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BPA)가 1부두의 역사성을 감안해 매립하지 않고 남겨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빠르면 2028년 세계유산 등재 여부가 확정됩니다.
그런데,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이 자신의 이름을 붙인 도서관을 1부두 위에 지어달라며 200억 원을 기부한다고 합니다. 부산시는 김 회장과 곧 양해각서를 맺는다고 합니다.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피란수도 유적의 핵심 공간인 1부두에 인공 구조물이 들어선다면 유산 훼손으로 등재가 무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어렵게 번 돈을 도서관 건립을 위해 200억이나 기부하는 김 회장의 정신은 칭송받아 마땅하고, 시민이 친근하게 접근할 만한 문화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부산 원도심과 북항 재개발 지역에 멋진 도서관이 들어서는 것은 크게 반길 일입니다. 하지만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같은 장기 프로젝트를 8년째 끌어오는 부산시는 짧게는 2030세계박람회에서, 길게는 피란수도 유산을 간직한 부산의 미래상을 그리면서 1부두의 위상과 역할이 어떤 것이어야 할지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독지가의 뜻을 살리면서, 세계유산 등재에도 무리가 없을 슬기로운 대안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북항 재개발 지역 안에는 아직 팔지 않은 땅도 있고, 부산역을 건너오면 접근성도 나쁘지 않습니다. 양자택일이 아니라 양수겸장이 될 수 있는 슬기로운 해법을 찾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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