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는 홍범도 장군 재평가 논란을 카자흐스탄에서 지켜본 이가 있었습니다. 유라시아교육원에서 한국과 북방의 연결을 모색하는 이재혁 이사장입니다.
카자흐스탄은 홍 장군이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고려극장을 지키다 생을 마감한 곳입니다. 일제의 박해를 피해 새로운 삶터를 찾아 떠난 동포들과 독립운동가들은 연해주에 대거 자리잡아 지내다 1937년 소련 스탈린 정부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낯선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로 삶의 기반을 모조리 옮겨야 했습니다. 만주사변 이후 조선인의 스파이 혐의를 의심해 연해주에서 조선인을 분리하면서, 척박한 중앙아시아를 개발하는데 근면한 조선인을 활용하겠다는 계산이었던 겁니다. 소설가 김숨은 <떠도는 땅>에서 우리 동포들이 탄 이주 열차의 처절한 풍경을 상세히 그려냈습니다. 수많은 동포들이 열차 안에서 유명을 달리할 만큼 혹독한 이주였고, 열차에서 내린 후에도 황무지에서 허리 한 번 제대로 펼 수 없는 나날이었습니다.
80년 넘게 흐른 지금 중앙아시아 각국에서 고려인 후예들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소식은 그저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고려인들에게 홍범도 장군은 자신과 한국, 혹은 조선을 잇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한국과 중앙아시아를 이어주는 소중한 자산이기도 합니다.
이재혁 원장은 이번 사태가 얼마나 안타까웠던지 2021년 홍 장군 유해를 카자흐스탄에서 모셔온 것부터가 잘못이라고 안타까워 합니다. 알마티 1140km 북서쪽 크질오르다에 그대로 묻혀 고려인의 영웅이자 한국인의 진취적 기상을 상징하는 분으로 계속 계시게 하는 것이 한민족과 중앙아시아 100여 민족의 우정을 상징하는 가교역으로 자리매김하는 뜻에서 차라리 나았겠다는 겁니다.
소련 공산당 가입 논란에 대해서도 이 이사장은 간첩 혐의까지 받는 나라 잃은 유랑민을 이끄는 지도자로서 다른 선택지가 있었겠냐고 답합니다. “시대와 인물에 대한 평가는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수단과 목적을 구분해 가며, 큰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홍 장군의 음성일지 모른다고 쓴 문장이 실제 목소리처럼 또렷이 들립니다.
“이런 꼴 보려고 내가 그렇게 만주를 떠돌고 소련 땅을 전전하며 투쟁했던가. 이놈들아, 날 더는 욕보이지 말고 원래 누워있던 곳으로 도로 옮겨 놔라!”
해방 78년이 지났는데, 우리는 나아가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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