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들이 내놓은 명작…고레에다의 ‘괴물’과 핀처의 ‘더 킬러’
일본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괴물’은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교사와 학부모의 갈등을 소재로 합니다. 시놉시스만 보면 학생인권과 교권의 대립을 다룬 사회고발 영화 같지만 실제 영화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미나토(구라카와 소야)는 담임 교사 호리(나가야마 에이타)에게 폭언과 구타를 당했다고 주장하고, 이에 화가 난 미나토의 어머니(안도 사쿠라)는 학교를 찾아가지만 교장과 호리 선생을 비롯한 관계자들은 영혼 없는 사과만 내놓습니다. 미나토 어머니의 시각으로 본 호리 선생은 아동학대를 저지른 교사고, 학교 측은 방관자입니다. 그러나 호리 선생의 입장에서 펼쳐지는 2부에선 사건의 내막이 드러납니다. 어른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이 혼란은 미나토의 ‘절친’인 요리(히이라기 히나타)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3부에서 비로소 해소되고, 영화는 또 다른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영화는 한 사건을 세 사람의 시점에서 재구성하며 점차 실체를 밝히는 형식을 취합니다. 이야기 진행을 위해 개연성과 설득력을 양보한 대목이 있는 점은 아쉽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카모토 유지 작가의 짜임새 있는 각본이 돋보입니다. 이 작품은 올해 5월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했습니다. ‘괴물’은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 ‘어느 가족’처럼 사회 문제의 내면을 깊이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메타포(상징)와 복선이 많아 ‘N차 관람’하기에도 좋습니다. 지난 3월 작고한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엔딩은 과연 명장면입니다. 혹평이 많았던 ‘브로커’로 실망을 느꼈던 고레에다 감독의 팬이라면 이번 작품은 만족스럽게 감상할 수 있겠습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로 유명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신작 ‘더 킬러’는 BIFF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기자도 표를 예매하는 데 실패해 현장에서 대기한 끝에 겨우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핀처 감독은 ‘세븐’(1995), ‘패닉룸’(2002), ‘조디악’(2007) 등을 낳은 스릴러의 대가입니다. ‘더 킬러’ 역시 시종일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쫄깃한 연출이 인상적인 역작입니다. 영화는 길 건너편 건물의 타깃을 노리는 전문 킬러(마이클 패스밴더)의 독백으로 시작합니다. 돈만 받으면 누구든 죽이는 이 킬러는 마침내 타깃을 포착했지만, 처음으로 실수를 저질러 저격에 실패합니다. 이에 고용주들은 킬러가 대가를 치르도록 조치하고, 분노한 킬러는 복수에 나섭니다. ‘더 킬러’는 주연을 맡은 마이클 패스밴더의 ‘원맨쇼’에 가깝습니다. 패스밴더의 독백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1부의 경우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구성이지만, 고독과 냉혹이 묻어있는 차가운 목소리가 서스펜스 그 자체입니다.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되뇌는 자기암시는 킬러를 냉혈한처럼 보이게 하지만, 한편으론 살인에 방해가 될 뿐인 인간성을 잃어버리기 위한 발버둥 같기도 합니다. 핀처 감독은 역시 완급조절에 능합니다. 대체로 정적인 흐름 속에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중요한 대목에선 역동적인 촬영과 격렬한 맨몸 액션을 활용해 박진감과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현실감 있는 연출 기법 덕에 관객은 영화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운드입니다. 음향과 음악을 활용해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연출이 감탄을 자아냅니다. 스타리움관 의자에서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오는 25일 개봉하면 꼭 영화관에서 감상할 것을 추천합니다. 11월 10일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더 킬러’는 올해 첫선을 보인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다만 다소 시원찮은 마무리는 호오가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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