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액션을 제외한 나머지입니다. 그중에서도 개연성과 현실성이 심각하게 떨어집니다. 킬링타임 영화가 으레 그렇지만, ‘비키퍼’는 도저히 몰입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우선 범죄자 잡겠다면서 무고한 경찰들을 너무 많이 잡는 애덤은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도 없는 캐릭터입니다.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도 탐탁지 않습니다. 죽은 엘로이즈의 딸이자 FBI 요원인 파커(에미 레이버 램프먼)는 애덤과 보이스피싱 조직을 동시에 추적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야 하는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표정 연기가 단조로워서인지 카리스마라곤 느껴지지 않고, 눈에 띄는 매력도 없습니다. 파커의 단짝 요원인 와일리(바비 나데리)는 감초 캐릭터로 투입됐지만 역시 존재감이 미미합니다. 조연들의 감정 연기는 시종일관 과잉됐고, 완급조절 없이 ‘강대강’ 대치만 난무합니다. 에이어 감독이 보여주기식 다양성에만 신경을 쓰느라 정작 캐스팅과 연기 디렉팅에는 큰 고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의심될 정도입니다. 파커를 맡은 램프먼은 흑인 여성이고 와일리 역의 나데리는 이란 출신 남성입니다. 극 중 FBI 팀장급 현장 요원도 아시아계, 대통령은 여성으로 그려졌습니다. 정치적 올바름(PC)을 지향하는 것에는 찬성이지만, 영화에서 무엇보다 우선 순위로 둬야 하는 건 작품성입니다. 비현실적인 대목들도 거슬립니다. ‘비키퍼’에서 FBI와 CIA 등 미국을 대표하는 수사 정보기관은 허술하기 짝이 없어 몰입을 방해합니다. 후반부에는 스토리 전개상 결정적인 전환점이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지나치게 현실성이 없어 황당합니다. 애덤이 상대해야 할 빌런 역시 수시로 바뀌고 무능해 긴장감을 조성하지 못합니다.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정체가 분명해지는 비키퍼 프로그램도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맷 데이먼 주연의 ‘본’ 시리즈 속 ‘트레드스톤’ 프로그램과 비슷한 점이 너무 많아 실망만 안깁니다. 전체적으로 상황에 맞지 않는 심오하거나 의미심장한 대사들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맞춤법에 맞지 않는 자막 오타까지 있었습니다. 다만 스토리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관객에게는 ‘비키퍼’가 괜찮은 팝콘무비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개봉 이튿날인 4일 오후 현재 ‘비키퍼’의 CGV 골든에그 지수는 95%에 달합니다. 후기를 찬찬히 살펴보니 액션은 시원시원해서 볼 만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호평들에도 ‘생각 없이’ 혹은 ‘머리 비우고’ 보면 좋다는 전제 조건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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