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들을 위한 비평을 해보자면, 애초 캐릭터 설정에서 무리가 있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 죽이는 일을 하는 냉정한 킬러들이 왜 서로를 그토록 아끼고 가족처럼 여기는지 모를 일입니다. 관객 입장에선 조연들의 감정 연기에 이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인공 캐릭터인 영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시종일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독백을 내뱉는 강동원은 ‘더 킬러’의 마이클 패스벤더를 연상시킵니다. 멀리서 의뢰인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장면에선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영일은 이처럼 냉정하고 차분한 캐릭터인데, 극 후반부로 가면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급발진’이 잦아집니다. 이와 별개로 잔뜩 깔린 목소리로 내뱉는 대사가 종종 불명확하게 들리는 문제도 있습니다. 스릴러 영화에서 자주 본 기법들이 남발되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이나 플래시백의 빈도가 필요 이상으로 많습니다. 긴장감을 조성하는 초저역의 배경 음악은 볼륨이 너무 높은 데다 역시 빈번하게 삽입돼 요란하기만 합니다. 가혹한 평가일지 모르겠지만, 겉멋만 들었다는 느낌이 가시지 않습니다. 영화는 나름의 반전 요소를 갖췄습니다. 영일은 청소부를 둘러싼 음모론에 점점 깊이 빠져들게 되는데, 그 음모가 실재하는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습니다. 앞서 우연의 연속으로 가능했던 ‘설계’들 역시 진짜였는지 망상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인셉션’(2010)과 아주 유사한 열린 결말에 관객은 의문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 의문은 열릴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라기보다는, 갑작스러운 마무리에 대한 황당함에 가깝습니다. 관객들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 없습니다. 개봉 2일 차인 30일 오후 3시 현재 ‘설계자’의 CGV 골든에그 지수는 61%에 불과합니다.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시나리오 완성도입니다. 히치콕은 “좋은 영화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시나리오, 시나리오, 시나리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그만큼 시나리오가 중요한 법입니다. 그러나 설계자의 시나리오는 허술하고 어설픕니다. ‘설계자’라는 제목에 걸맞게 시나리오 설계를 제대로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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