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 수업은 끝났고, 이제 강사와 함께 직접 바다로 들어가서 실습을 해볼 시간이야. 강사가 한 명 한 명 직접 파도를 타보도록 도와줘서 그리 어렵지 않게 일어설 수 있었어. 처음 파도를 타며 일어섰을 때의 짜릿함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 다만 매번 일어서서 파도를 탈 수 있었던 건 아냐. 잘 가다가도 균형을 잃고 넘어지거나 아예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어. 서핑 마니아 서 씨는 곧잘 탔어. 근데 김 씨는 일어서서 타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했어. 딸은 정말 쉽게 탔는데, 솔직히 나보다 훨씬 잘했어. 강사는 “여성분들이 힘을 빼고 타는 걸 잘해요. 그래서 초심자 때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잘 타는 경우가 많아요”라고 위로해줬어. 서 씨는 “원래 처음부터 일어서는 게 쉽지 않아요. 김 씨가 정상이고 나머지 두 분이 정말 잘 타는 거에요”라고 칭찬했어. 수상스포츠 특징은 시간이 정말 잘 간다는 거야. 강사의 도움으로 바다에서 간단히 사진도 찍고 파도 몇 번 더 타고 나니 어느덧 점심 먹을 때가 돼서 다 같이 서핑숍으로 돌아갔어. 각자 배달 음식이나 편의점 음식을 챙겨 먹었는데, 어색한 분위기도 깰 겸 간단한 ‘스몰토크’를 시도해봤어. 서 씨는 올해 4월 우연히 송정을 찾았다가 서핑에 빠졌어. “혼자만의 자유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게 서핑의 매력”이라는 게 서 씨 설명이야. 보통 스포츠는 경쟁을 해서 상대를 이겨야 하는데, 서핑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거야. 테니스를 비롯한 각종 운동을 즐겼던 서 씨는 최근엔 개인용 보드를 따로 구매했을 정도로 서핑에 푹 빠졌어. 멀리 인천에서 여기까지 오는 이유를 물어보니 “그만큼 송정 파도가 좋다”고 답했어. 다른 지역에 비해 파도의 빈도가 잦아서 서핑하기에 이만한 곳이 없다고 하네. 다만 인기가 좋은 만큼, 주말에는 바다가 서핑객들로 가득한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야. 사실 평일인 이날도 파도를 타다가 서로 부딪힐 뻔했을 정도로 서핑객이 적지 않았어. 부산 관광을 위해 송정으로 온 김 씨 모녀는 이번에 처음 서핑을 체험했어. 김 씨는 “어렵지 않게 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힘드네요”라며 “물 먹느라 정신 없었지만 바다에서 노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라고 말했어. 두 번째 시도 만에 보드에서 일어선 딸 이 씨는 알고 보니 유도, 수영 등 운동 경력이 많은 스포츠 마니아더라. 이 씨는 “나는 한 번 만에 일어설 수 있을 줄 알았다”면서 오히려 아쉬워했어. 서핑객들 만족도는 높은데, 서핑숍에는 고충이 있었어. 요새 심한 불경기라 그런지 평년에 비해 손님이 반토막 났다는 거야. 송정에 있는 서핑숍들이 비슷한 형편인데, 대부분 업주들이 서핑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달리 할 만한 일도 없어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실정이라고 해. 30대인 이 업체 대표도 13세부터 서핑을 즐기기 시작해 26세부터 서핑 강사로 일했고, 가족들도 서핑업에 종사해왔어. 우리를 가르친 강사는 대표의 친동생이었고.

토크는 이 정도로 하고, 다시 바다로 나갔어. 이제 강사는 휴식을 취하고 강습생들끼리 자유시간을 즐길 차례야. 친절하게도 서 씨가 코치 역할을 해줘서 몇 가지 요령을 더 익힐 수 있었어. 서핑은 기다림의 미학도 있는 스포츠야. ‘좋은 파도’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파도를 고르는 맛이 있어. 해변까지 길게 가는 좋은 파도인 줄 알고 올라탔다가 도중에 동력을 잃고 멈추거나 주저앉게 되는 경우가 흔했어. 그만큼 좋은 파도를 탔을 때의 쾌감도 컸어. ‘물 들어올 때 보드 타는’ 재미는 서핑을 해본 사람만 알 수 있지. 서 씨 말에 따르면 이날 송정 파도는 빈도가 정말 좋은 편이었다고 해. 다른 날 다시 오면 실망하게 될 수도 있을 정도로 평소보다 파도가 잦았고, 덕분에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파도를 탈 수 있었던 거라고 하네. 김 씨 모녀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 “꼭 일어서고 만다”고 다짐하며 승부욕을 보이던 김 씨는 ‘중꺾마’ 정신으로 여러 번 도전한 끝에 결국 파도를 가르며 우뚝 서는 데 성공했어. 이 씨는 보드에 앉은 채 휴대전화 카메라로 엄마의 모습을 담거나 일명 ‘MZ샷’(휴대전화를 높이 들어 촬영하는 셀카)을 찍는 등 열심히 추억을 쌓았어. 바다에 수십 번은 빠지다 보니 시간이 정말 잘 갔어. 놀다 지쳐 서핑숍으로 돌아오니까 오후 5시쯤 됐어. “서핑하는 동안 잡념이 싹 사라지지 않나요”라는 서 씨의 말에 나를 포함한 나머지 3명 모두 고개를 끄덕였어. 인근에 숙소를 잡은 김 씨 모녀는 “저희는 내일도 여기로 서핑하러 올 거에요”라며 웃었어. 서 씨한테 몇 가지 팁도 배웠어. 4월부터 서핑을 시작한 서 씨는 한여름을 제외한 해수욕장 폐장 시기에 사람이 적어 더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어. 또 파도타기 좋은 시간대를 ‘WSB FARM’이라는 앱으로 알 수도 있어. 웹캠으로 각 지역 바닷가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파도가 얼마나 강할지 예보도 볼 수 있으니 서핑객이라면 이 앱을 활용하는 게 필수야. 마침 식사 시간이라 서 씨와 함께 인근 맛집에서 저녁 식사까지 하게 됐어. 끝까지 이름도 연락처도 알려주지 않은 서 씨와 특별한 기약까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서핑숍에서 만나자는 말만 남기고 각자 발걸음을 돌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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