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시향을 위해선 각 원료를 스치듯 살짝만 맡아봐야 해. 향이 좋다고 가까이에 코를 박고 오래 맡으면 금세 후각이 마비돼버리거든. 마음에 드는 향을 체크하는 것도 잊지 말라고. ‘향마카세’를 즐길 때는 커피 원두가 필수야. 너무 많은 향을 맡아서 향이 잘 구분되지 않을 때 원두 향을 맡으면 후각이 초기화되는 효과가 있거든. 시향을 계속하다 보면 그게 그거 같다가도 향료마다 차이점이 드러나는 지점이 있어서 재밌어. 예를 들어서 같은 시트러스 계열이라도 자몽이나 라임 향은 너무 강렬해서 나와 맞지 않았고, 그린 계열이라는 ‘밤부’(대나무)는 내가 싫어하는 우디 계열 향이 났어. 하지만 대다수 원료는 내 취향에 너무 잘 맞아서 선별 작업이 쉽지 않았어. 이 향도 좋고 저 향도 좋고…하나같이 실력이 뛰어난 오디션 참가자들을 보는 심사위원의 기분이 이런 게 아닐까 싶어. 상큼하고 향긋하고 달콤하면서 고급진 향들을 연이어 맡으니 기분이 좋아지고 시간도 금방 가더라.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향이 무엇인지 찾아보면서 ‘힐링’하는 것도 수업의 핵심 목표 중 하나야. 실제로 향을 맡으며 힐링하기 위해 혼자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하는 사람이 꽤 많다고 해. 냄새를 맡으면 과거의 기억과 감정까지 생생히 떠오르는 ‘프루스트 효과’ 때문에 시향 도중 울컥하는 수강생도 더러 있었다고 하네. ‘향마카세’를 거쳐서 내가 고른 원료는 총 10개였는데, 계열로 따져보면 5개였어. 이걸 다시 내가 선호하는 순서대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생님이 추천하는 향료 몇 개를 추가해서 ‘레시피’가 완성됐어. 향수 베이스 용액에 각 원료를 1방울부터 수십 방울까지 섞었는데, 배합 비율은 비밀이야. 참고로 이날 내가 만든 향수는 ‘퍼퓸’이야. 향수는 향의 원액이 차지하는 ‘부향률’ 즉 농도에 따라서 ‘퍼퓸’(15~20%), ‘오드퍼퓸’(7%), ‘오드투알레트’(3%), ‘오드콜로뉴’(1%) 등으로 구분돼. 부향률이 높을수록 좋은 향수인 건 설명이 필요없겠지? 선생님 레시피대로 원료들을 배합해 시향을 해보니 정말 내 취향에 찰떡같이 맞는 향이 완성됐어. 이렇게 완성한 나만의 맞춤 향수는 냉장고에 3~7일 정도 숙성하는 과정을 거친 뒤에 사용할 수 있어. 요즘처럼 더울 땐 7일 정도는 숙성해야 한다고 하네. 향의 효과는 대단해. 첫인상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가 후각인데, 학계에 따르면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기억에 오래 남는 감각이야. 샤넬 설립자인 가브리엘 샤넬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타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는 최고의 액세서리는 향수”라고 말했다지. 그래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하는 영업사원들이 종종 향수 공방을 찾기도 해. 그런가 하면 폐소공포증 때문에 컴퓨터단층(CT) 촬영도 받지 못하던 사람이 좋아하는 향수를 만들어 뿌린 뒤에는 마음이 안정돼 촬영을 받을 수 있게 된 사례도 있어.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힌 수강생은 할머니를 위해 향수를 만들러 온 손자였어. 이 손자는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할머니께서 후각과 청각은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병상에 뿌려줄 향수를 이곳에서 만들어 갔대. 이런 장점들 덕에 향수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지고 있고, 조향 사업이 활성화되는 추세야. 그러나 선생님은 이런 분위기를 틈타 전문성이 떨어지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는 조언도 남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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