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볼버’는 2015년 개봉한 ‘무뢰한’으로 만났던 오승욱 감독과 배우 전도연이 약 10년 만에 재회한 작품입니다. 약속된 돈을 받아내기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 직진 또 직진하는 수영의 저돌성과, 그런 수영을 둘러싼 인물들의 암투와 수싸움이 핵심적인 관람 포인트입니다. 영화 좀 봤다는 사람들은 극 중 빌런 조직으로 등장하는 이스턴 프로미스를 듣자마자 마틴 스콜셰이지 감독의 범죄 영화 ‘이스턴 프라미스’(2008)가 떠올랐을 겁니다. 오 감독은 이 수위 높은 마피아 느와르물처럼 인물들 간의 대립 구도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려 합니다. 이런 긴장감은 배우들의 명연기 덕에 자연스레 연출됩니다. 전도연의 연기는 과연 압도적입니다. 전도연은 시종일관 냉정하고 차분한 표정을 유지하지만, 눈빛으로는 배신감으로 인한 분노와 상실감을 표현합니다. 캐릭터의 개성을 강화하는 직설적인 화법과 과감한 실행력도 전도연 특유의 시크한 이미지와 잘 들어맞습니다. 극 중 수영은 이스턴 프로미스의 이사이자 영화의 메인 빌런인 앤디(지창욱), 한때 가까웠지만 껄끄러운 사이인 현직 형사 동호(김준한) 등 일부 인물과 대립각을 세웁니다. 반면 윤선(임지연)과의 관계는 독특합니다. 윤선은 기본적으로 철저히 돈과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이기적인 인물이지만, 푼수 같고 인간적인 면모도 있는 입체적인 캐릭터입니다. 냉정할 때는 전도연 못지않게 냉정하다가도 뜬금없이 기분이 ‘업’ 되기도 하는 온도 차가 매력적입니다. 이런 캐릭터는 작위적인 느낌이 나기 쉬운데, 임지연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대단한 연기를 펼쳤습니다. 임지연 스스로도 현장에서 연기를 하며 “마치 알을 깨고 나온 기분”이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수영과 윤선이 케미스트리(조화)를 일으키면서 만들어지는 여성 서사도 반갑습니다. 조연들도 밀리지 않습니다. ‘본부장’을 연기한 김종수와 ‘조 사장’ 역의 정만식이 캐릭터에 딱 맞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이정재, 정재영, 전혜진 등 특별출연도 빈틈이 없습니다. 특히 이정재와 전도연이 연기 합을 펼치는 장면은 몰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를 살리는 연출은 군더더기 없습니다. 필요할 때 클로즈업이 들어가고, 필요할 정도로만 음악을 사용하는 절제미가 돋보입니다. 피아노와 현악기 위주의 배경음악이 분위기를 적절히 고조시켰는데, 아니나 다를까 국내 최고 수준인 조영욱 음악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음원을 다운로드 받고 싶었지만 찾을 수 없어 아쉬울 정도였습니다. 또 의상을 포함한 미장센도 눈길을 끕니다. 의외로 웃음 타율도 높았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냉랭하고 무미건조한 하드보일드 스타일이지만, 이를 역이용해 진중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합니다. 통통 튀는 윤선 캐릭터가 핵심 역할을 합니다. 기자가 영화를 관람할 당시 극장 안에 계셨던 어르신들도 웃음을 터트릴 정도로 세대를 아우르는 센스 있는 유머였습니다. 영화는 느와르 작품답게 긴장감을 통해 몰입을 유발합니다. 초반에는 여러 인물이 등장해 약간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이야기가 단순하게 압축되면서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인물들 간 수싸움과 갈등 구도가 펼쳐지면서 장르적 재미에도 충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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