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 표식이 그려진 러시아 탱크들이 병원 주위를 포위합니다. 카메라는 병원 창문으로 이 모습을 몰래 촬영합니다. 이윽고 탱크 포신이 병원 쪽을 향해 돌아가고, 촬영팀은 황급히 창문에서 멀리 떨어집니다. 영화 ‘마리우폴에서의 20일’은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음을 예상하고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 현장을 찾은 기자들의 취재기를 담아낸 다큐멘터리입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체르노우를 포함해 사진기자와 영상 프로듀서 등 3명의 AP통신 취재팀이 목숨을 걸고 촬영한 기록입니다. 영화는 침공 첫날인 2022년 2월 24일부터 시작합니다. “전쟁은 폭발음이 아니라 침묵으로 시작된다”는 체르노우의 말처럼 아직 시내는 조용하고 평화롭습니다. 그러나 이내 공습과 폭격이 시작되고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됩니다. 임시 대피소로 변한 헬스클럽에 피난민이 몰려듭니다. 안락하고 안전한 침실에 있어야 할 아기들이 대피소 바닥에서 잠을 자고, 부모는 아이 걱정에 눈물을 훔칩니다. 영화는 러시아 측에서 ‘가짜’라고 주장하는 전쟁의 진짜 모습을 낱낱이 보여줍니다. 러시아의 포격에 평생 살아온 집이 파괴된 중년의 여성은 울분을 토하고, 대피소에서 만난 어린 아이는 공포에 휩싸인 채 “죽고 싶지 않다”며 울먹입니다. 마리우폴은 날이 갈수록 처참해집니다. 러시아의 무차별 폭격은 사실상 민간인 학살입니다. 끊임없이 병원에 실려 오는 희생자들…. 4살짜리 아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 심폐소생술을 받는 장면은 차마 현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습니다. 자식 잃은 부모는 참척의 고통에 짐승처럼 울부짖고, 분노에 찬 의사는 취재팀에 “푸틴에게 이 아이를 보여줘라”고 소리칩니다. 눈물과 분노를 참기 힘든, 지켜보기 고통스러운 장면들의 연속입니다. 현장에서 두 눈으로 이를 기록해야 하는 취재팀은 더욱 괴롭습니다. 체르노우는 “이건 보기 고통스럽다. 하지만 보기에 고통스러워야만 한다”고 읊조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