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드라마 가운데 최대 화제작인 '재벌집 막내아들'이 지난 25일 막을 내렸는데 후폭풍이 만만찮습니다. 원작인 웹소설과 다른 결말 때문인데, 속 시원한 복수로 끝난 소설과 달리 드라마는 재벌집 막내 손자 진도준이 그동안 빌드업해온 복수극을, 결국 '재벌가 뒷감당 팀장' 윤현우의 꿈에서 펼쳐진 일로 마무리해 개운하지 못한 뒷맛을 남겼습니다. 삼국유사에 실린 '조신의 꿈', 이를 영화로 만든 배창호 감독의 '꿈'이 떠올랐습니다. 속세의 욕망이 허무하다는 걸 꿈으로 깨우친 조신은 깨달음을 얻었는데, 복수극의 허무한 결말에 시청자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굴지의 재벌가가 내부의 누군가에 의해 단죄되는 일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소설에 열광했던 팬들은 그 통쾌한 사이다맛에 환호했던 겁니다. 현실이 너무 고구마 삼킨 것처럼 답답하니까. 앞으로도 변할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으니까. 소소한 복선과 연결지점의 논란은 차치하고, 이를 각색한 작가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실현 불가능한 일로 소설처럼 끝맺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 됐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현실이 고구마인데, 가상의 사이다가 무슨 소용. 이런….
지난 1년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 계획한 일이 계획대로 마무리된 적보다, 그에 못미치거나 생각 못한 결과로 끝난 적이 훨씬 많지 않던가요? 가끔 오르는 산도 처음 마음 먹기가 귀찮고, 가파른 오르막을 헐떡이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디딜 땐 이런 힘든 일을 뭐하러 하나 싶다가도, 꾸역꾸역 오르다 보면 결국은 정상에 이릅니다. 그런 점에서, 한 해의 성취도만 따질 일이 아닙니다. 아직 정상에 오르지 못했어도 귀찮은 짐을 싸 산행길에 내디딘 첫 걸음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런 작심과 첫걸음이 없었다면 정상도 없습니다. 정상에 오른 많은 이가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거라고.
SNS로 엿보는 타인의 삶은 매일이 화려하고 멋진데, 내 삶은 왜 이 모양일까 한심한 생각이 든 적도 있지요. 우리 사회 병폐 중 하나인 '비교'가 비대면 시대를 맞으면서 SNS에서 '보이는 삶'을 지고의 가치로 만들어가는 모양새입니다. 보이는 멋진 삶의 집약체가 '재벌집 막내아들' 속 진도준입니다. 가문, 돈, 지성, 외모,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사람. 현실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거의 모든 이는 윤현우처럼 삽니다. '비교하지 말고, 내 기준으로 살아가기.' 윤현우가 드라마 결말에서 미라클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그 나름의 단죄와 복수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삶의 자세를 지켰기 때문이리라고 해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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