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인 기자는 1996년 연재가 종료된 ‘슬램덩크’ 만화책을 한 번도 펴본 적이 없습니다.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로 입문(?)해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로 만화의 세계에 빠졌던 세대입니다. 슬램덩크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일부 등장인물과 만화 속 명장면을 인터넷에서 본 적은 있습니다. 농구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기본적인 규칙은 고등학생 때 배웠고, 대학 시절 몇몇 선배들과 미니 게임을 종종 해본 게 전부입니다. 그런 ‘농알못’(농구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눈에도 지난 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최고의 애니메이션 영화였습니다. 영화는 전국 제패를 꿈꾸는 북산고등학교 농구부 주전 선수들이 한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원작에서 가장 비중이 높은 주인공은 강백호인데, 영화는 송태섭 위주로 흘러갑니다. 송태섭이 아픈 가족사를 극복하고 ‘전국최강’ 산왕공고 농구부를 상대하는 과정이 극의 큰 줄기입니다. 송태섭의 등번호 7번에 담긴 의미도 전달합니다. 극 중 산왕공고 농구부는 자타공인 전통강호이자 절대강자입니다. 산왕과 비교하면 송태섭이 몸담고 있는 북산고 농구부는 전형적인 ‘언더독’ 입니다. 북산의 선배들은 ‘전국제패’라는 대의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장 채치수를 중심으로 모여든 강백호, 정대만, 서태웅 그리고 송태섭은 열정과 투지만큼은 전국 최고 수준이지만 크고 작은 약점도 있습니다. 특히 송태섭은 비교적 작은 신장 때문에 언더독 중에서도 언더독 입니다. 완벽한 선수들로 팀을 꾸린 산왕 앞에서 북산은 희생양에 불과해 보입니다. 사실 언더독의 유쾌한 반란은 애니메이션이나 스포츠 영화의 전형적이고 흔해 빠진 스토리입니다. 그런데 ‘더 퍼스트 슬램덩크’에는 피가 끓어오르게 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선 긴장감과 박진감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사력을 다해 속공을 펼치는 서태웅, 위기의 순간마다 팀을 구해내는 강백호의 모습을 타이트한 클로즈업과 슬로모션으로 구현하니 실제 경기를 볼 때보다 더한 몰입감이 느껴집니다. 2D와 3D의 경계에 있는 듯한 작화도 인상적입니다. 원작 만화의 질감은 살리면서도 공간감과 속도감을 불어넣었습니다. 3D로 모델링을 하고 2D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텍스쳐를 입히는 ‘카툰렌더링’ 기술을 적용했다고 합니다. 완급 조절도 기가 막힙니다. 적재적소에 깔리는 일본 유명 밴드의 음악이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절정의 순간에 음악 대신 흐르는 정적은 극장 안의 모두를 숨죽이게 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완전 멋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송태섭의 서사도 꽤나 감동적입니다. 영화는 북산 대 산왕의 경기 장면과 송태섭의 성장 과정이 교차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데, 슬램덩크 원작 내용을 전혀 몰라도 극의 흐름을 이해하고 감정을 이입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눈시울이 붉어져 울음을 참아야 했습니다. 주변을 보니 다들 손으로 조용히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물론 유머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강백호의 익살스러움이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인터넷에서 봤던 각종 ‘짤’과 명대사들을 만나는 것도 반갑습니다. “포기하면 그 순간이 바로 시합 종료” “난 지금입니다” “왼손은 거들 뿐” 등등 이미지로만 봤던 유명한 장면과 대사들의 유래를 알게 되는 재미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소년만화 특유의 도전정신을 촌스럽지 않게 그려낸 점이 좋았습니다. 스포츠 심리학에 따르면 관중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탑독’을 상대하는 언더독을 응원하기 마련입니다. 언더독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역시 이러한 공식을 성공적으로 적용했습니다. 북산이 포기하지 않고 산왕을 상대로 득점을 해낼 때의 희열감은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게 합니다. 2시간 전만 해도 이름조차 헷갈렸던 슬램덩크 등장인물들을 응원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됩니다. |